"체 게바라가 간 길서 미래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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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해운업체 사장직을 걷어차고 모터 사이클로 장장 2만㎞에 달하는 남미 종주에 나선 40대 실업가가 있다. 허민(44) 엔듀로마리타임 사장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이끌어낼 힘은 정신과 육체의 수련에서 나온다"며 "모험을 숭상하는 북구인들처럼 육체를 극한의 단련에 들게 하려고 모험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콜럼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출발해 안데스산맥을 종주하고 브라질 리오에 도착하는 대장정이다. 안데스 산맥은 파나마에서 시작해 칠레의 남쪽 끝까지 6000㎞에 달한다. 그가 거치는 나라는 9개국이다. 여정은 1만9959㎞에 달한다. 목표 종주 기간은 석달. 현재 중간쯤인 볼리비아에 머무는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모든 틀을 던져 버리고 나를 찾고, 과거를 따져보고, 미래를 디자인하고, 거기에 필요한 사색을 하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가 남미 종주를 꿈꾼 것은 지난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본 뒤부터다. 의학도에게 보장된 편안한 삶을 던지고 혁명가의 길을 택한 체 게바라의 남미 모터사이클 여행을 더듬어 가면서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사표를 내고 처음엔 무얼 할지 고민이었어요. 돈 많이 버는 건 목표가 될 수 없구요. 그때 이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그는 지난해 9월 모터사이클 면허를 따고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 남미 비포장도로를 잘 달릴 수 있는 BMW R1200GS 모터사이클을 구입했다. 연습을 충분히 해서 지난해 12월 중순 콜롬비아로 향했다.

그의 자유인 기질은 이력에서 드러난다. 20대에는 부산 해양대(항해학과)를 졸업하고 3년간 항해사로 유조선을 탔다. 30대에는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에 이민을 가 선박 중개업으로 돈을 모았다. 거대 자본이 집약된 해운 파이낸싱이라는 게 운임수입 못지 않게 큰 돈 벌이가 된다는 사실에도 눈을 떴다. 마흔 살이던 2004년 귀국해 KSF선박운용이라는 선박 펀드의 주역을 맡았다. 이후 선박 펀드가 뜨면서 그는 국내 몇명 되지 않는 해운 프로젝트 전문가로 통했다. 중견 해운업체인 K1마린 사장을 지내다 지난해 10월 해운 컨설팅 업체인 '엔듀로마리타임' 회사를 서울 삼성동에 설립했다.

허 사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선박 건조의 40%를 점하는 조선 강국인데 해운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며 "선박 건조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해운업 발전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미 종주는 홈페이지(www.endurokorea.com)에서 볼 수 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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