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거미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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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 놓고

새끼를 건드리면 움찔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꿈자리까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 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뿌리에서 꽃까지 이어져 있어서, 호흡이 참 길다. 짐승과 사람 사이, 땅과 하늘이 다 하나로 이어져 있어 호흡이 참 아름답다. 손바닥만 한 거미줄을 놓고 측량기사가 쩔쩔매고 있다. 한 올 거미줄의 경련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비 그친 뒤, 일곱 빛깔 무지개! 어디 아픈 데 없느냐고 이쪽에서 저쪽까지 묻는다.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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