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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카데미 후보에 선정된 스타 6명의 원탁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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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2007 아카데미상 후보에 선정된 최고 스타 6명의 원탁 대담.
그들이 진솔하게 밝히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뉴스위크의 연례 원탁 대담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열렸다. 할리우드의 이집션 극장이었다. 우리는 참석하는 연예인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모두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옆문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파파라치를 거느리고 다니는 브래드 피트가 할리우드 블루바드에서 내리더니 선글라스만 낀 채 정문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올 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무대 위에는 피트 말고도 2006년을 빛낸 다섯 배우가 앉았다. 케이트 블란쳇, 포리스트 휘태커, 헬렌 미렌, 페넬로페 크루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였다. 말할 필요도 없이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무대의 스타들도 마찬가지였다.

인생과 직업과 열정과 두려움을 털어놓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청했다. 디캐프리오가 ‘타이타닉’ 출연 이후 “귀여운 섹시남”으로 취급받아 달갑지 않다고 하자 피트가 놀렸다. “자넨 섹시남 맞아.” 최신작 ‘바벨(Babel)’에서 피트의 아내로 출연한 블란쳇은 피트의 직업윤리에 우정 어린 화살을 날렸다. 모두 떠들고 웃으면서 두 시간 넘게(물론 화장실 가는 시간은 줬다)서로 질문을 주고받았다. 약속시간이 되자 다들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우리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께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뭐라고 하시던가요?
헬렌 미렌: 우리 부모님은 결사 반대였어요. 그래서 3년 동안 교사 훈련을 받았죠. 난 선생으로선 아주 형편없었어요. 스물두 살 때쯤에야 비로소 직업배우가 됐죠.
포리스트 휘태커: 우리 부모님은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라셨어요. 그런 실용적인 직업을 원하셨죠. 배우생활을 10년쯤 했을 때도 여전히 다시 공부하기를 바라시더라고요. 돈벌이가 시원찮고 때론 고전의 연속이었지만 “싫어요, 엄마. 전 이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식으로 대답했어요. 사실 나 역시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대화였죠. “난 배우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먹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케이트, 아랍의 복싱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맞나요?
케이트 블란쳇: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시절인데 1년 휴학계를 내고 여행을 떠났어요. 돈이라고는 호주달러 2500달러가 전부였으니 몇 푼 안 됐죠. 그 돈으로 1년을 돌아다녀야 했어요. 그래서 이스탄불에 머물 때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벙커 같은 여관에 묵었죠. 나중에 카이로에서 묵을 때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돈이 다 떨어졌는데 로비에서 지폐와 여권을 위조하던 어떤 스코틀랜드인이 “이집트달러 5달러를 벌 생각 없느냐”고 묻더군요. 몸을 파는 그따위 일은 아니었어요. 권투 영화를 찍는데 엑스트라로 나가는 일이었죠. 그래서 “좋다”고 했어요. 팔라펠(중동 사람이 즐기는 일종의 샌드위치)을 공짜로 주더라고요.
미렌: 우린 공짜 식사를 하려고 배우 일을 하죠. 마음속으론 다들 일거리 없는 배우니까.

배우란 아무리 성공한 뒤에도 다시 일거리를 얻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나 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브래드?
브래드 피트: 아뇨, 천만에요. [웃음]

여러분은 배우가 되기 전에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을 하셨더군요. 포리스트는 테너 가수였고. 헬렌은 축제에서 큰 소리로 손님 모으는 일을 했다던데.
피트: 난 스트리퍼(스트립쇼 출연자) 기사 노릇을 했어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정말로요?
블란쳇: 지난달에 그랬잖아요.
피트: 나 이 여자 좋아 죽겠어. 진짜로 스트리퍼들을 태우고 총각파티 따위에 데리고 다녔죠. 차에 태워주고 업소에 가서는 돈을 받고, 질 나쁜 프린스의 카세트테이프를 틀어주고, 여자들이 벗어 던지는 옷을 챙겼어요. 건전하다고 할 일이 못되는지라 점점 울적해지더군요. 두 달쯤 하다가 못하겠다고 했더니 사장이 “오늘 하나만 더 하면 마지막”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전에 만난 적이 없는 그 여자가 알고 보니 로이 런던[유명한 연기 지도자]이 가르치는 연기학원에 다니던 중이더군요. 덕분에 나도 가서 알아보고 결국 오늘의 내가 됐죠.

한 스트리퍼가 당신의 인생역정을 바꿨군요.
피트: [고개를 끄덕이며] 스트리퍼들이 내 인생을 바꿨죠.

다음주 연예주간지 내셔널 인콰이어러에 나오겠군요.
피트: [천장을 올려다보며] 일주일만 내버려두면 좋겠어요. 딱 일주일만.
리어, 열여섯 살 때 첫 작품 ‘디스 보이스 라이프(This Boy’s Life)’를 찍었는데 어땠어요?
디캐프리오: 촬영장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맸어요. 마이클 카튼-존스 감독님이 보호자 역할을 하셨죠.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로버트 드니로와 연습할 땐 어떤 선수의 야구카드를 수집하는지 절대 말하지 말게.”
미렌: 난 여러 해 동안 촬영장에서 마치 전조등을 받은 토끼처럼 얼떨떨했답니다. 누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몰랐죠. 정말 무서운 분위기예요.

페넬로페, ‘하몽하몽(Jamon, Jamon)’에서 매춘부의 딸로 나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열일곱 살에 섹스심벌이 됐는데 어땠나요?
페넬로페 크루스: 하루는 아빠와 함께 거리를 산책하는데 누군가가 차 안에서 “사랑해!”라고 소리지르더군요. 1분 뒤에는 다른 사람이 “창녀야!”라고 소리질렀죠. [웃음] 그때 내가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믿기지 않더군요. 영화를 찍을 때 열여섯 살이었거든요.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고 대본도 못 보게 감췄어요. 부모님이 나중에 할머니를 모시고 시사회에 오셨어요. 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도 영화는 괜찮았고 여러 가지로 일이 잘 풀렸죠. 그 뒤로 영화를 찍을 땐 옷을 여기까지 가렸어요. [목 근처로 손을 들어올렸다]

리어, 역시 아주 어린 나이에 10대들의 우상이 됐잖아요.
디캐프리오: 잠깐 텔레비전에 나오면서 틴 잡지들 표지에 등장하고는 했죠.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어요. 배역에 많은 생각을 쏟아 부으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로 자리 잡고 싶었거든요. 그러다가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찍었고, 거기서 도로 귀여운 섹시남으로 돌아갔죠.
피트: 자네 섹시남 맞아. [웃음]
디캐프리오: 그런 식으로 이미지가 정해지니까 진짜 맥빠지더군요. 잠시 연기생활을 접고 싶었어요. 그것이 내 인생을 여러모로 바꿔놓았지만 동시에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군요. 처음으로 배우 인생의 주도권이 내 손에 들어왔죠. 하지만 좀 이상했어요.

브래드, 할리우드의 기대와는 달리 전형적인 주연 남우의 길을 가지 않았죠.
피트: 연기란 나를 발견하는 일인데 그 “주연 남우” 대본이란 것들은, 여기 리어나도도 잘 알지만, 전부 똑같아요. 아무 배우나 뽑아 코드를 꽂으면 주제의 변주가 나오죠. 그러나 그건 아무나 하는 일이에요. 거기서 뭘 발견하고 말고 하겠어요?
블란쳇: 그래서 남자들은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감독과의 관계에 의지하나요?
디캐프리오: 난 확실히 마틴 스콜세스 감독과 친분을 맺고 싶었어요. 반드시 신뢰할 누군가를 찾아야 했거든요. 연기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면 좀 이상하죠. 종종 감독들과 한 방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특정 작품에 관한 구상을 듣게 돼요. 그러나 그들의 말과 실제 은막에 나오는 영화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어요.
피트: 감독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식으로 연기하기를 바라죠?
디캐프리오: 가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죠.
미렌: 여자와는 무관한 이야기군요. 우리는 대신 감독들의 공상을 연기하게 되죠. 이 업계는 항상 여자를 어떤 틀에 넣으려 하고 우리는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싸우죠. 그들은 여배우가 크거나 늙거나 변하기를 원치 않아요. 그래서 다음 단계로 나가는 배역을 맡게 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죠. ‘프라임 서스펙트(Prime Suspect)’가 그런 경우였어요. 갑자기 내 실제 나이를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게 됐죠. 화려한 조명도 필요 없고 분장할 필요도 없어졌어요. 해방의 기쁨을 맛봤죠. 그 덕분에 지금도 배우생활을 해요. 한발 더 앞으로 나가게 허용됐거든요.

포리스트, 원래는 흑인 배우용이 아니었던 배역들을 맡았죠.
휘태커: 감독들이 마음을 열고 내게 그런 배역을 맡긴 순간이 있었어요.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에서 맡은 배역은 원래 밥맛 없는 유대인 남자로 설정됐죠. ‘컬러 오브 머니(The Color of Money)’에서 맡은 배역은 원래 여피족이었고요.
디캐프리오: 그래요? 그 배역 진짜 대단했죠. 난 아주 어릴 때 ‘컬러 오브 머니’에서 당신을 보면서 “저 배우는 누구지”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휘태커: 내가 대타로 찍었어요. 처음에 맡은 배우가 해고되는 바람에 내가 가서 오디션을 봤죠. 그래서 그렇게 됐어요.
미렌: 우리 남편[테일러 헥퍼드]이 감독한 영화 중에…제목이 뭐더라? 아이 참, 제목을 잊어버렸네요. 데브라 윙거가 나오는 유명한 영화였는데.

‘사관과 신사(An Officer and a Gentleman)’ 말씀이죠.
미렌: 고마워요. 루 고셋 2세가 맡은 배역이 원래는 백인 몫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고집 부려 루를 뽑았죠. 루는 그 배역으로 아카데미상을 탔고.

어떤 영화를 보고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요?
크루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욕망의 낮과 밤(Tie Me Up! Tie Me Down!)’. 열세 살 때 그 영화를 봤어요. 완전 넋이 나간 상태로 극장문을 나섰죠. 그때부터 페드로에게 미쳐서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블란쳇: 내가 유일하게 맡고 싶었던 배역은 ‘너는 좋은 아이야, 찰리 브라운(You’re a Good Man, Charlie Brown)’의 루시였어요. 그레고리 펙도 되고 싶었고.
피트: 몰래 ‘새터데이 나이트 피버(Saturday Night Fever)’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깊은 감명을 받았죠. [웃음]
미렌: 처음으로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영화는 안토니오니 감독의 ‘정사(L’Avventura)’였어요. 그 전에는 록 허드슨과 도리스 데이의 영화만 봤는데 별 감흥을 못 느꼈죠.
휘태커: 내가 어릴 땐 흑인 영화배우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연기자가 된다는 생각은 못했죠. 처음 감명받은 흑인 배우는 시드니 포이티어였어요.
디캐프리오: 난 일곱 살 무렵 에이전트를 구하려 다녔어요.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머리는 인디언처럼 양 옆을 치고 가운데를 세웠는데 거부당했죠. 원래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열여섯 살 때 ‘디스 보이스 라이프’에 출연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영화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에서 제임스 딘을 본 기억이 납니다. 혼잣말을 했죠. “야, 저렇게 뛰어난 연기가 실제로 가능하구나.”
피트: ‘성장통(Growing Pains)’에서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잖아요.
디캐프리오: 고마워요. 선배도 마찬가지예요.

리어나도, ‘롬퍼룸(Romper Room)’ 촬영장에서 쫓겨나지 않았던가요?
디캐프리오: 맞아요. 세 살 때 이야기죠. 카메라를 보고 달려가서 막 흔들면서 말했죠. “날 좀 봐!”

더스틴 호프먼의 유명한 일화가 있죠.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연기가 뭐냐고 물었더니 “날 보라고, 날 봐, 날 보란 말이야”라고 하더라는 말.
미렌: 난 남들이 쳐다보는 게 싫어요.
블란쳇: 그 말은 아마도 “나의 속을 들여다보라”는 말이지 싶어요. 우리가 자연주의니 사실주의니 생각하는 것들이 사람들의 생활이 연기가 돼버린 소위 리얼리티 텔레비전 때문에 설 자리를 잃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사실 가면을 벗고 인간의 참모습을 드러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거죠. 카메라 앞에서 편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어요.
피트: 연기란 사실 팀 스포츠죠. 한 배우가 각광받는 경우가 많지만 테니스처럼 좀 더 나은 사람과 함께 치면 경기 수준이 높아지죠. 무슨 말인고 하니, ‘착한 독일인(The Good German)’을 보면 케이트가 조지 클루니를 보완해주잖아요. [웃음]

다른 배우들의 영화를 보면서 “내가 맡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배역이 있나요?
디캐프리오: 엄청 많죠. ‘성공의 달콤한 향기(Sweet Smell of Success)’의 버트 랭커스터.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의 로버트 드니로 등등.
크루스: ‘애정의 조건(Terms of Endear ment)’의 두 여자 중 아무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Women on the Verge of a Nervous Breakdown)’의 카르멘 마우라.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The Apartment)’의 셜리 매클린.
블란쳇: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맡았던 배역은 몽땅.
미렌: 그 배역을 연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거기서 감명을 받는 거죠. 영화를 보면서 “내가 맡았더라면 더 잘했을 텐데”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잠시 침묵] 뭐, 가끔 그럴 때가 있기는 해도. [웃음]
블란쳇: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비비언 리가 욕실에 들어가니까 말런 브랜도가 문을 막 두들기죠. 여자가 문을 열어주니까 남자 손이 움찔합니다. 정말 대단한 장면이에요. 브랜도는 그 배역으로 아주 사납게 나갈 수도 있었는데 대신 그 손을 통해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죠.
디캐프리오: 여러분께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요. 배우들이 “배역에 완전 몰입”이니 어쩌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영화 찍을 때 관련되는 기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카메라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망각하기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표현해야죠. 모든 게 사라지고 진짜 그 사람으로 바뀌어서 말하는 순간이 있나요? 나 같으면 영화 찍으면서 그런 일이 두 번 이상 일어나면 다행이겠어요.
피트: 술을 마시면 좀 도움이 되죠. [웃음]

여러분은 영화 볼 때 배우들의 기법을 의식하나요, 아니면 우리 일반인처럼 그냥 영화에 빠져버리나요?
미렌: 퐁당 빠지죠.
블란쳇: ‘배틀필드(Battlefield Earth)’에선 빠지지 않았어요.

맡지 않았다가 나중에 아쉬움이 남는 배역이 있었나요?
블란쳇: 난 어떤 면에선 운이 좋았어요. 학교 다닐 때 키가 크고 성 정체성이 모호했거든요. 늘 남자 역을 맡았죠. 영화인생 초기에 엘리자베스 1세 역을 연기해 국적도 모호했죠. 그래서 좀 이상하고 근사한 선택을 했다는 기분이 들어요.
피트: [디캐프리오에게] 성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해당되잖아. [웃음]

그 이야기를 해볼까요?
피트: 사양하겠어요. 한두 번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블란쳇: 사진도 있는데요.

다른 배역보다 특히 더 고민스러웠던 배역이 있나요?
블란쳇: 다 무섭죠. 그러나 고민이란 자리가 바뀐 흥분일 뿐이라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실패할 소지가 다분해 내가 나온 영화는 절대 보지 않아요. 그러면 늘 “좋아, 잘됐군” 하고 생각할 수 있죠. ‘바벨’ 찍을 때 다른 영화에선 겪어보지 못한 체험을 했어요. “이건 정말 멋진 장면이 나오겠다”고 생각했죠. 막상 영화를 보니 온통 브래드만 나오더군요. [웃음]

헬렌, 엘리자베스 여왕이 당신의 연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세요?
미렌: 당연히 모르죠.

보기는 했을까요?
미렌: 물론이죠. 안 보고 배기겠어요? 여왕의 측근 중에 로버트 레이시라는 위대한 역사가가 있는데, 영화가 끝나고 제작진 명단이 올라갈 때 여왕께서 이런 식으로 말씀하실 법하다고 하더군요. “그리 나쁘진 않군. 진토닉이나 한잔 할까.”
피트: 여왕의 모습을 처음에 어떻게 연구했나요? 여왕은 걸음걸이가 장중하던데. 당신 모습을 보면 안경이 늘 콧마루에 걸리더군요.
미렌: 물론 여왕을 찍은 필름이 많죠. 그러나 사생활의 모습보다 공식석상에서의 모습을 연구했어요. 실물 배역을 연기하려면 마치 형사라도 된 듯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모습을 봐야죠. 여왕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한데 필름을 자세히 보니까 늘 엄지손가락으로 결혼반지를 빙빙 돌리더군요. 본인 고유의 박자, 긴장이 있다는 얘기죠.

맡은 인물을 만들어낼 때 그처럼 외부의 물건이 필요합니까? 페넬로페, ‘귀향(Volver)’에서 보면….
크루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요.

엉덩이에 뽕을 넣었잖아요.
미렌: 나도 ‘더 퀸(The Queen)’에서 엉덩이에 뽕을 넣었어요. 페넬로페만 그런 게 아니라.
크루스: 와, 신난다. 이제 누가 그 질문을 하면 이렇게 답할래요. “헬렌도 했다던데 뭘.”

엉덩이 뽕이 도움이 됐나요?
크루스: 대성공이었죠. 페드로 감독님과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한 1분쯤 했으려나. 뽕 덕분에 일하고 움직이는 자세가 달라졌죠. 주인공에게 딱 맞는 신발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여러분은 모두 외국인 말투의 배역을 멋지게 소화한 경험들이 있으시죠. 케이트는 지난해 세 차례나 다른 말투의 배역을 맡았고요. 배역을 구축할 때 그건 넘어야 할 장애물인가요?
휘태커: 말투는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동작을 취할지 궁리하는 데 도움이 돼요. 때때로 배우의 말투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이유는 신체에서 괴리되기 때문이죠.
미렌: 말투란 완전히 익히기 전에는 마취제 같아요. 연기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게 되죠. 온통 자기 목소리가 잘못 내는 소리만 들리거든요. 페넬로페는 그보다 더 어려운 경우죠. 외국어로 연기하기란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도 안 되네요.

페넬로페, 영어로 찍은 첫 영화가 ‘하이로 컨트리(The Hi-Lo Country)’였죠. 무서웠나요?
크루스: 너무 무서웠어요.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어요. 아주 친절하셨지만 억양이 억세고, 난 맡은 배역의 대사만 외웠거든요. 수시로 화장실에 들어가 울고 나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했죠.

브래드, 가이 리치 감독의 ‘스내치(Snatch)’에서 구사한 아일랜드 집시 말투는 너무 그럴 듯해서 통 못 알아듣겠더군요.
피트: 촬영 개시 전날 밤, 막판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죠. 사투리를 익히려고 노력했는데, 아마 좀 늦게 시작했지 싶어요, 너무 부자연스러웠어요. 하루 전날 감독에게 가서 말했죠. “난 이 배역 못하겠으니 당신이 하쇼.” 그랬더니 “그래, 알았어”, 그러더라고요. 문득 깨달았어요. 베니치오 델토로가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에서 보여준 천재성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죠. 그래서 한밤중에 런던의 노스엔드를 돌아다니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그랬더니 점점 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다행히 성공했죠.
블란쳇: 말투란 가볍게 덧칠해서 되지 않아요. 구문과 리듬과 호흡이 중요하죠. 사람들이 언제 멈추고 어떤 단어를 강조하는지. 그걸 말투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고의 과정이죠. 유기적이어야 해요. 일찍 시작할수록 잘 되죠.

[이때 브래드가 (한방 먹었다는 제스처로) 가슴을 찔리는 동작을 취한다.]

미렌: 지당하신 말씀. 마치 언어와 말투가 별개라는 듯이 겉에 갖다 붙여서 될 일이 아니죠. 미국인들은 나보고 늘 “당신 말투가 근사하다”고 말하는데 내가 무슨 빌어먹을 말투가 있어요? 말투는 당신들이 있지. [웃음] 실은 그렇게 말하지 않죠. 이렇게 말해요. “감사합니다. 무척 자상하시군요.”

배우라는 직업에 관한 생각이 연기생활을 시작할 때와 달라졌나요?
피트: 처음에는 내가 찍는 영화가 곧 나를 말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배역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지리라고.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빠가 됐거든요. 내게 소중한 것들이 생겼죠. 그동안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그 무엇을 쫓아다녔어요. 일전에 전화통화를 하다가, 리어나도는 요 근래 몇 해 동안 아주 강인한 남성 역할을 맡았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얘기가 튀어나오더라고요. “좀 더 남자다운 연기를 하고 싶어.”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죠. “아니지, 남자답게 살면 영화는 절로 따라와.”
휘태커: 일과 생활을 따로따로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내게는 일이 지속적인 성장과정이죠. 나 자신의 팽창 말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일을 통해 나 자신에 관해 깨달은 것들을 좀 더 완전하게 아이들·가족·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용했어요. 그것이 완벽한 흐름이 됐죠.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어요.
디캐프리오: 이런, 나도 애를 낳아야겠군요? 난 최종 완성물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뒤에야 비로소 연기가 즐거워지더라고요. 열다섯 살 때 1년 반 동안 오디션을 160번 보고도 단 한 편 출연하지 못한 기억이 있어요. 나 역시 할리우드 키드가 돼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리어예요! 오늘은 독서를 할 계획이랍니다. 아, 네. 학교에선 아주 재미있었어요. 전 학교가 좋아요!” [웃음] 모두들 감독과 출연 섭외 담당과 기타 등등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체제의 산물이 됐죠. 그래서 결과보다 배역과 작품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늘 제게 묻죠.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뻔한 대답을 해줍니다. “대본을 연구해. 열심히 노력하고. 포기하지 말거라.” 그러나 솔직히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죠. “관계자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말거라.”
미렌: 열다섯 살에 그 점을 깨닫다니 운이 좋군요. 연기에 관한 말런 브랜도의 위대한 충고는 “너무 신경 쓰지 말게”였어요. 난 그 말이 이해가 안 됐죠. 신경을 너무 썼고 지금도 그렇거든요. 그러나 브랜도의 말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따위의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뜻이죠. 개뿔…. 브래드의 말도 아마 그런 취지 같아요.
피트: 그래요. 그런데 이 친구가 네 단어로 말한 내용을 난 800단어나 동원했네요.

여러분은 모두 부자십니다. 모두 유명하고. 평단의 칭찬도 받았고. 그런데 뭣 때문에 일하죠? 연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뭡니까?
디캐프리오: 좋으니까요. 영화 이상으로 내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형식이 없어요. 영화처럼 일을 마친 후 나 자신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게 없어요. 영화에 내 모습을 담고 훗날 추억을 되새기며 그런 체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만족스럽죠. 멋진 선물이라고요.
휘태커: 마법이죠. 거기에 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요?
크루스: 평생 가도 연기에 관해 모두 알기는 어렵다는 사실에서 큰 행복감을 느껴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처럼 잘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저와 함께할 거예요.
피트: 난 줄거리가 마음에 들고 영화산업을 존중하기 때문에 합니다. 그 안에서 좀 더 나아지고 그 때문에 더 나아지고 싶어요. 지금도 그렇게 되려고 애씁니다. 영화의 위력을 신봉하죠.
블란쳇: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영화제작은 관객과의 대화라고 말했어요. 다른 사람과 마음이 통하면 짜릿하죠. 난 연기할 때 사는 기분을 느껴요. 비극적이긴 하지만 사실이죠. 가능하다면 연습실에서 죽고 싶어요.

헬렌, 연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뭐죠?
미렌: 돈이죠. [웃음] 엄청나게 재미있기도 하고. 물론 강렬한 예술적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결국 돈과 재미죠.

SEAN SMITH, DAVIDE ANSE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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