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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두 女기자, 맞선 체험을 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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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맞선 현장의 남녀들은 어떤 심리전을 벌일까. 제 짝을 만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쏟아붓는 에너지는 얼마나 될까. week&의 두 미혼 여기자가 맞선 현장에 출동했다. 남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기 위해 약간의 장치를 마련했다. 우선 기자라는 직업을 숨겼다. 또 결혼정보회사 선우(www.sunoo.com)의 도움을 받아 그 회원인 것처럼 꾸몄다. 맞선 상대 남성은 미팅 내용을 기사화해도 좋다고 허락한 사람들. 두 기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애프터 신청 받아내기'. 각각 전략을 세워 맞선 전선에 나섰다.

*** 데이트

◇ 전략 세우기

커플 매니저를 만났다.

"인상은 좋으신데 왜 화장 안하세요?"

"잠이 많아서…." (-_-;)

"캐주얼 차림은 안됩니다. 약속 시간에 늦지 마세요. 여성스러워 보이게 손수건이나 화장지도 챙기세요."

내가 만나기로 한 사람은 특별히 원하는 이상형이 없단다. 직접 만나 진검승부를 벌일 수밖에.

맞선 현장의 심리학

인사를 몇 마디 나눴다. 머릿속에서 첫인상 분석이 시작된다.

'심동섭. 72년생. 기간 통신 사업자인 엔터프라이즈네트웍스 대리. 키가 크다.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군. 성격 좋고 털털해 보인다. 쾌활하다. 유머 감각도 있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여 : 주말엔 뭐하세요?

남 : 친구들 만나서 술 마셔요.

여 : (친구는 많겠군.) 술 좋아하세요?

남 : 네. 주량이?

여 : 맥주는 배 부를 때까지 마셔요.

남 : 헉.

여 : (앗, 실수!) 맥주는 쉽게 배부르잖아요. (<<;) 한 1천5백cc정도?

남 : 해장은 어떻게 하세요?

여 : 콩나물 해장국.설렁탕.

남 : 훌륭하다.

여 : 네?(아니면 뭘로 해장하나. 피자.스파게티?)

남 : 음식 가리는 여자분들 많잖아요. 세련된 분인 줄 알았더니 굉장히 토속적이세요.

워밍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탐색전에 들어갔다.

여 : 결혼 급하세요?

남 : 집에서는 급하게 생각하지만 저는 아니에요. 손자 필요하면 입양시키겠다고 말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아요. 전 좀 못됐어요.

여 : (마마보이는 아니란 말이군.)너무 그러시면 안되죠. 하긴, 저도 뭐….(-.-)a

남 : 결혼해도 일 하실건가요?

여 : 그럼요. 아이를 낳는다면…, 그래도 일하겠죠. 요즘 사십오세 정년이라는데 살아남으려면 힘들겠지만.

남 : 맞아요. 내일 일을 알 수 없으니.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 나중에 마누라, 자식이 다 나만 바라보고 있을 텐데.

여 : 네….(책임감 강한 건 좋지만…. 남자들은 저런 짐을 지고 있구나.)

애프터 받아내다?

두 시간여의 짧은 데이트가 끝나고 심씨의 친구가 그를 만났다.

"어땠어?"

"키가 작아서 좀 불만이었는데 얘기해 보니까 성격이 좋고 속도 깊은 것 같아. 자신감 있어 보이고 가정적이기도 한 것 같네."

"그래? 사실은 결혼정보회사 회원이 아니라 기자야. 그래도 애프터 할래?"

"(@_@) 싫어. 기자는 바쁘잖아."

속마음 열어보니

"속여서 죄송해요. 맥주나 한 잔 하실래요?"

흔쾌히 사과를 받아준 그와 근처의 맥주집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 : 결혼은 일부러 미루시는 거예요?

남 : 사람만 있으면 결혼하고 싶죠. 이 나이에 사랑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사람과 결혼하느냐 마느냐를 빨리 결정해야 하니까요.

여 : 여자를 보는 기준은?

남 : 다들 예쁘고 능력있는 여자 좋아하죠. 하지만 남자들이 보는 외모는 의외로 기준이 낮아요. 결국 마음만 맞으면 되죠. 남자요? 불쌍해요.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조건 나쁘면 선택받기 힘든 게 현실이잖아요.

여 : 조건이 좋은 편이시죠?

남 : 중상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커플 매니저에게 물어봤더니 딱 평균이래요.

여 : 그래도 (결혼시장에서 찬밥 신세인) 바쁜 여기자 보다야…. (<<;)

글=이경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 구애

문경 언니에게

대만은 따뜻해? 한국에 있는 이 사촌 동생은 나흘째 콜록거리고 있어. 파스를 일곱개나 붙였는데도 걸을 때마다 종아리며 발목이 욱신거리고 말야. 전투훈련이라도 했느냐고? 그럼~. 그것도 아주 혹독한 훈련이었지.

상부의 지시는 다음과 같았어.

'연애 전투력 향상 훈련. 27세 회사원과 맞선을 볼 것. 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의 이상형에 자신을 맞춰서 맞선에 성공할 것'.

헉, 맞선이라니. 언니도 알다시피 내가 언제 미팅.소개팅 한번 해봤느냐구. 가슴이 답답하더라.

결혼정보업체의 커플 매니저와 함께 상대남이 제시한 이상형을 면밀히 분석했지.

'예쁘고 귀여운 교사나 공무원. 여성스러우면서도 붙임성 있고 활달하며 애교가 많은 여자'.

한숨만 나왔지. 그런데 커플 매니저 왈, 남자들이 말하는 '예쁜 여자'란 모델 같은 외모가 아니라 '용모단정'이라는 거야. 일단 화장은 필수. 하지만 짙은 화장은 금물. 옅은 화장으로 신경썼다는 느낌만 주면 된대. 막 미용실에 다녀온 듯 우아한 세팅머리는 '맞선 남성이 싫어하는 헤어스타일 1위'라나. 의상은 원피스 정도의 가벼운 정장이 좋대.

자, 이제는 '성격 개조'. 모르는 남자에게 애교를 떨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나더라. 가족관계는 묻지 마라, 맞장구를 많이 쳐주고 남자가 리드하게 하라…. 아, 정말 주의할 점도 어찌나 많은지. 출신학교.직업 등 가공의 인적 사항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결전의 날이 왔어. 오후 2시, 서울 프라자호텔 커피숍에서의 어색한 첫 만남. 거짓말할 걱정에 상대를 똑바로 못 쳐다보겠더라고. 앗, 오늘의 컨셉트는 애교.발랄녀인데. 호흡을 가다듬고 애써 눈웃음을 지었지.

"취미가…?" 아차. 인적사항 외우기 바빠서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도 준비 못하다니. "만화책 보는 거 좋아하는데…." 앗, 나의 실수! 십자수.음악감상, 뭐 이런 여성스러운 취미를 댔어야지. 얼른 애교 모드로 전환. "오홍홍" 아…내 귀에도 어색한 웃음소리. 대학 교직원이라고 신분을 속인 바람에 주말에 뭘 하는지 설명하느라 진땀빼고, '발랄하게' 거짓말을 하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어.

커피숍을 나온 뒤가 설상가상이었지. 상대방도 소개팅 한번 해본 적 없는 초짜라 어딜 가야할지 통 모르겠다는 거야. 무작정 거리를 걸었어. 한시간, 두시간…걷다 지쳐 이른 저녁을 먹었지만, 밥먹고 나니 또 할 일이 없지 뭐야. 다시 걷기 시작했지. 영하로 뚝 떨어진 추위에 원피스를 입고 떨며, 모처럼 하이힐을 신은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몇시간이고 걸었어. 울고 싶도록 추운데도 애교를 연발해야 했으니…. 겨우 찾은 보드카페에서 40분 가량 게임을 하는 것으로 5시간의 맞선이 끝났어.

결과는 어땠느냐고? "여성스러움과 애교가 지나쳐서 부담스럽다"나. 걱정했던 외모는 '그럭저럭 OK'였는데, 최선을 다했던 애교가 '오버'라서 싫다니! 꾸며낸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무리였나봐.

"내가 원했던 조건과 일치하는데도, 막상 만나보니 다르다"며 맞선남은 앞으로는 조건 따지면서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대.

억지로 자신을 꾸미려다가 실패로 끝난 만남. 근육통과 감기 몸살만 얻은 내가, 진실한 마음 하나만으로 외국인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언니를 떠올린 건 당연하겠지?

글=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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