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적자에 부분손질 처방/무역적자 관련 정부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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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위기아닌 “우려” 차원으로 판단/섣불리 대응땐 오히려 역효과
정부가 당정협의회에서 무역수지 관리대책으로 내놓은 장·단기 처방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미 추진해온 것들을 긁어 모은데 불과하다.
무역적자의 내용을 뜯어보면 수치에 얽매여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게 정부의 기본시각인데다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한 별다른 정책수단도 없다는 입장이다.
무역적자가 우리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면 통상마찰을 각오하고라도 수입규제에 나서겠지만 정책의 줄기를 바꾸지않고 부분적인 손질로 적자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7월말 현재 무역적자가 81억달러에 이르고 있으나 적자의 대부분이 일시적인 현상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연초의 걸프전쟁에 따른 국제원유가격의 상승에다 소비증가가 겹쳐 연료수입이 상반기중에만 전년동기보다 16억5천만달러가 늘어났고 건설경기의 과열로 건설관련자재의 수입이 8억8천만달러나 급증했다.
또한 기업의 설비투자에 따른 자동화설비등 기계류수입(14억3천만달러 순증),해외여행자유화와 국내항공사의 노선확장에 따른 항공기도입(6억9천만달러 순증) 등도 수입증가세를 부추긴 요인이다.
그러나 설비투자를 위한 기계류의 수입은 앞으로 공급능력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고 농수축산물의 수입이 늘고는 있으나 국내 물가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방위산업물자를 수입통계(90년 12억달러)에 잡은 것도 무역수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상공부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 총수출입규모(올해 1천5백50억달러)의 5% 이내에서의 무역적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고 『8월중 전력난에 따른 집단휴가등으로 수출에 차질이 빚어져 적자를 나타낼 것이나 9월이후 무역수지가 균형을 이뤄 연간 무역적자는 80억달러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마디로 무역적자폭이 크기는 하지만 「위기」로까지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통화긴축설에 따른 주가의 폭락사태나 12일 외환시장에서의 달러화 사재기등과 같은 과민한 반응들이 우리경제에 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통화긴축설은 총통화증가율을 19%에서 17%로 낮춘다는 것인데 통화당국은 이미 연간 총통화증가율 억제선을 17∼19%로 설정해놓고 있다.
재무부는 『17% 이하로 총통화증가율을 끌어내리기는 하반기의 자금수요를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환율역시 외환시장이 자유화된 마당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또한 섣불리 원화가치를 평가절하할 경우 수입이 늘어나고 물가안정기조가 흔들리는 등 부작용만 커질 우려가 더 많은 것이다.
환율에 손대야 할만큼 수출이 부진한 것도 아니고 가격경쟁력 보다는 전체적인 산업경쟁력,더 나아가서는 국가경쟁력의 약화가 우리경제의 현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수입증가세가 둔화되지 않고 있고 이에 따라 무역적자가 지나치게 커지게 되면 외채증가등의 문제가 있는데 이는 총수요관리의 강화를 통해 풀어가야할 과제다.
더욱 경계할 것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의식해 국제수지를 「관리」하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큰 폭의 적자가 날 경우 이를 6공의 경제성적표와 관련지어 위기로 받아들이려는 시각이 없지 않다.
따라서 올들어 무역적자폭이 커진 것은 3저호황때 흑자관리의 실패,이에 따른 내수경기의 과열에 큰 원인이 있는 만큼 당장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응급처방보다는 중·장기적인 정책의 줄기를 바로 잡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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