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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시리아서 실마리 풀었다/회교과격파 서방인질 석방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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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동판도 재편따라 위상강화 노려
지난 8일 영국인 한사람에 이어 11일 프랑스와 미국인 인질 각 1명이 다시 회교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석방됨으로써 서방의 골칫거리 인질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 하다. 그러나 분파가 복잡한 테러단체들중에는 인질석방에 불만을 품고 있는 그룹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란이 재정지원을 받아온 레바논내 시아파 회교원리주의단체 「헤즈볼라」(신의 당)중 대 서방테러에 앞장서온 「회교지하드(성전)」는 8일 영국인 카메라기자 존 맥카시를 석방하면서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남은 인질들과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고 있는 3백70여명의 레바논·팔레스타인인들과의 교환을 제의했다. 84년 이래 레바논에서 납치된 90명 이상이 서방인중 대부분이 「헤즈볼라」에 잡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스라엘 정부는 레바논에 억류중인 7명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교환에 포함될 경우 이에 응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헤즈볼라의 또다른 분파로 9명의 서방사람들을 납치했던 「혁명정의기구」도 10일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 조제프 시시피오를 72시간내에 석방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회교원리주의 테러그룹에 의해 아직도 잡혀있는 서방인질은 미국인 6,영국인 2,독일인 2명,그리고 이탈리아인 1명 등 모두 11명으로 집계돼 있다. 이들 인질납치는 이스라엘에 동정적인 나라들에 대해 보복적인 성격으로 저질러져 왔다.
이번 인질석방에는 시리아와 이란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지난 두달동안 진행된 막후교섭에서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의 동생인 마흐무드 마데가 시아파 회교지도자들과 접촉하기 위해 수차례 레바논을 방문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란 혁명지도자 호메이니가 89년 6월 사망한 이후 이란에서 소위 실용주의자로 불리는 라프산자니는 대 서방관계 개선을 위해 헤즈볼라에 대한 재정지원을 줄이고 인질석방을 계속해왔다.
특히 이번 인질에 관한 시리아·이란 조치의 배경에는 걸프전후 중동판도의 변화가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걸프전 기간중 아랍연합군을 규합,미국과 함께 대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시리아는 미국과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전후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중동 새 질서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
걸프전에서 엄정중립을 고수했던 이란도 대 서방 이미지 개선에 나서면서 적대적이었던 미국과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이란은 이란·이라크전동안 피폐화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지난 79년 이후 미국이 동결하고 있는 1백20억달러 상당의 이란 자산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아와 이란은 인질을 잡아두는 것이 실익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대 서방협조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이란의 대 서방타협에 불만을 품은 그룹들이 8일과 10일 또다른 2명의 새로운 인질을 납치함으로써 찬물을 끼얹기는 했으나 4만여명의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레바논을 장악하고 있는 시리아와 테러단체들의 대부격인 이란이 이같은 판단을 바꾸지 않는다면 인질석방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8일 프랑스에서 측근 1명과 함께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 샤푸르 바크티야르 전 이란 총리가 이란내에서 대미 타협을 거부하는 강경파들에 의해 희생됐을 가능성도 있어 이란내 강·온파 대립의 추이가 계속 주목대상이 되고 있다.<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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