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날… 반성없는 일본/방인철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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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 히로시마(광도)에 원폭이 투하된지 꼭 46년째인 6일 오전 8시15분,히로시마 시내 평화공원에는 「원폭의 날」행사가 소리없이 시작됐다.
희생자의 영령을 위로하는 묵도와 함께 울려 퍼져가는 「평화의 종」소리는 참가한 5만5천명 인파와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 지구상에서 핵공포를 완전히 추방하자』는 내용의 평화선언도,『히로시마의 비극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온 세계가 함께 새겨야할 경고』란 가이후(해부준수)일본총리의 연설도 낯설지 않다.
매년 반복되는 「평화」「슬픔」「핵추방」 등의 낱말은 가장 중요한 말을 잊고 있기에 절실하게 들리지 않는지 모른다.
바로 「반성」이란 말이다.
일본인의 원폭희생자 위령제는 평화공원밖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한국인희생자 위령비가 쓸쓸하게만 느껴질 때 더 이상 인류가 함께 하는 「슬픔」이 될 수 없다.
평화를 외치며 「핵추방」을 다짐하는 일본 반군시민들의 노력도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강조하는 극우파들의 집회로 희석되어 버린게 이날 행사의 흠이다.
지난 2월 새로 취임한 히라오카(평강)히로시마 시장은 처음으로 『일본은 일찍이 식민지지배 및 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국민들에게 커다란 괴로움과 슬픔을 안겨주었다』고 과거의 잘못을 사과했다.
늦었지만 바람직한 히라오카 시장의 사과도 한국인희생자들의 보상요구에 냉담하리만큼 차가운 반응을 보인 일본정부의 태도로 희석되긴 마찬가지다.
해마다 「원폭의 날」행사가 온 세계와 그 슬픔을 함께하고 평화에 대한 더욱 간절한 호소력을 갖기위해선 일본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각국의 전쟁희생자 유가족과 부상자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보상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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