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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 재규어 수난 시대, 자존심 '깨지고' 여론 '뭇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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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중앙

영국의 최고급 명품 브랜드들이 연초부터 '동네북' 신세다.

버버리(Burberry)와 재규어(Jaguar)를 두고 하는 얘기다.

버버리는 올 3월 사우스웨일스 론다 트레오치 공장의 중국 이전을 앞두고 자국내 여론이 더욱 들끓고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돌던 재규어의 경우 포드의 고위인사가 이달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애매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재규어 브랜드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에 빠졌다.

의류와 자동차산업 분야에서 오랜 세월 동안 명품 지위를 누리던 두 브랜드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에 놓인 것이다.

◇ 버버리 '메이드 인 차이나'?

레인코트의 대명사로 일반 명사보다 더 유명한 '버버리'.

그러나 버버리는 트레오치 공장의 채산성이 떨어진다며 올 3월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으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지난해 9월 발표했다.

그러자 영국인들은 "영국을 대표하는 명품 버버리에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를 붙일 수 없다"며 들고 일어났다. 게다가 트레오치 공장이 문을 닫으면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300명이 해고당하기 때문에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이전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찰스 왕세자 피터 하인 북아일랜드 장관 글레니스 키녹 유럽의회 의원 배우 리스 아이판스와 요안 그리피스 성악가 브린 터펠 등 고위인사와 문화예술계 명사들이 중국 이전을 반대하는 캠페인에 합류했다.

버버리 공장 이전을 반대하는 세력에 든든한 후원자도 생겼다. 바로 250만 파운드에 달하는 버버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 성공회다.

교회 자산을 관리하는 성공회의 재무위원회는 최근 버버리 측에 "왜 트레오치 공장을 폐쇄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서를 보냈다. 동시에 이 문제를 '윤리적 투자를 위한 자문기구(EIAG)'에 의뢰했다.

EIAG는 윤리적.사회적 규범을 위반한 기업으로부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성공회 측은 버버리 문제를 '기업 윤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EIAG에서 버버리 주식의 매각을 결정한다면 버버리 주가는 폭락할 수밖에 없다.

성공회는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무기로 기업을 움직였던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해 브리티시항공(BA)에서 벌어졌던 '십자가 목걸이' 논쟁이다. BA는 지난해 11월 기독교인으로 십자가 목걸이를 공개적으로 걸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 런던 히스로 공항의 직원 나디아 에웨이다의 요청을 무시했다.

"어떤 직원이든 종교적 상징물을 포함한 모든 장신구를 유니폼 위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회사 내규를 내세웠다. 그러자 성공회의 로언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900만 파운드의 BA 주식 보유분을 매각할 수 있다며 BA를 압박했다. 결국 BA는 12월 손을 들고 직원들이 십자가를 착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여론뿐만 아니라 성공회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지만 버버리도 나름대로 반박에 나섰다.

버버리 측은 "버버리의 대표적인 상품인 레인코트는 요크셔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 트레치오 공장 폐쇄와는 아무 상관 없다"며 "만약 트레치오 공장 노동자가 해고된다면 요크셔 공장의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에도 연말 선물 문제가 버버리를 괴롭히고 있다. 버버리는 트레오치 공장의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해 지난해 말 버버리 스카프 1장과 자사 상품을 살 수 있는 30파운드짜리 상품권을 보너스로 줬다.

그러나 일부 노동자는 '모욕'이라며 상품권을 아예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영국 언론은 "버버리는 영국에서 가장 쩨쩨한 자린고비(Scrooge)"라고 비난했다.

"혹을 떼려다 되레 붙인 꼴"이 된 버버리가 올 3월 트레오치 공장을 실제로 폐쇄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재규어 팔까 말까

재규어는 1989년 미국의 포드에 경영권이 넘어갔지만 여전히 영국인의 사랑을 받는 고급차 브랜드로 남아 있다.

영국 왕실이 의전 차량으로 가장 애용하고 있어 명품의 지위를 계속 누리고 있다. 게다가 대표 차종인 XJ8이 5만 달러 이상 자동차 부문에서 전미자동차협회(AAA)가 선정한 '2006년 최고의 차'로 뽑히면서 명성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호재에도 재규어는 또다시 매물 신세가 되면서 고급차 브랜드로서 참기 힘든 설움을 겪고 있다. 재규어 자체 문제라기보다 모기업인 포드가 휘청거리면서다.

포드는 지난해 8월 골드먼삭스의 인수합병(M&A) 전문가인 케니 리트를 영입해 그룹 내 구조조정 대상을 물색했다.

그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온 포드 그룹 내 유럽산 브랜드인 재규어 볼보 애스턴 마틴 랜드로버를 우선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각 브랜드의 수익성을 평가한 뒤 부문별로 매각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불똥이 먼저 튄 곳은 바로 재규어다. 랜드로버와 묶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선데이타임스는 "랜드로버와 재규어 브랜드를 하나로 통합시킨 뒤 그 지분의 과반을 다른 투자자에게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포드는 양사의 소액주주로 지분을 보유하면서 기술과 공급 면에서 계속 제휴관계를 맺기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드의 앨런 멀러리 사장도 이달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현재로서는 재규어 매각 계획이 없다"면서도 "브랜드 통합 등을 포함한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멀러리 사장은 보잉 CEO 출신으로 2000년대 초반 유럽의 에어버스에 밀려 위기에 몰린 보잉을 대규모 감원과 경영혁신을 통해 살려낸 인물이다.

지난해 9월 포드에 온 뒤 내년까지 북미 지역에서 4만 명을 감원하고 14개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발표한 멀러리 사장의 다음 행보는 당연히 브랜드 매각 쪽으로 향할 듯하다.

[USA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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