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이대로 둘 수 없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무역수지의 적자행진이 더욱 빨라졌다. 올 상반기에 이미 사상최대를 기록한 무역적자는 하반기의 첫달인 7월에 접어들어 20억달러(통관기준)를 돌파,월별실적으로 최악의 상태를 나타냈다. 이로써 금년 7개월간의 적자규모는 80억달러를 넘어섰고 60억∼70억달러로 잡았던 연간적자 억제선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 남은 기간에 무역수지를 눈에 띄게 호전시켜줄만한 호재는 커녕 적자를 더욱 불려나갈 요인들이 안팎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하반기부터 무역수지가 다소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 보았던 정부당국은 그같은 낙관적 전망의 근거들이 지금도 유효한가를 다시 따져보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태를 막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물론 7월의 수출부진에는 6월의 밀어내기식 수출등 몇가지 일시적 요인들이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7월의 대폭 적자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수출과 수입의 움직임을 지배할 주요 변수들을 살펴보면 결코 낙관속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수출확대를 노린 환율조정은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돼 있고 수출경쟁력을 결정하는 임금·물가·금리 등의 가격변수들은 일본·대만 등의 경쟁국들보다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여왔고 앞으로 이런 추세가 반전하리라는 보장도 없는 형편이다.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쟁력 강화는 물론 단기간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수입쪽을 쳐다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한층 크게 나타난다. 국내경기의 호황국면과 확산일로의 시장개방효과가 맞물려 적어도 연말까지는 수입에 인위적인 제동을 걸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은 건축경기 억제를 통한 건축자재 수입의 감소 등 몇가지 위안거리를 제시하고 있으나 수입팽창을 주도하는 대세에 비추어 그것들은 극히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더구나 7월부터 본격화된 유통시장 개방은 시간이 흐를수록 수입촉매기능을 더욱 크게 발휘할 것이 분명하다. 국산공급이 가능한 기계류의 수입에 대해 외화대부를 허용한 최근의 조치에서 보듯 통화압력에의 대응들도 대부분 무역수지를 압박하는 내용으로 돼왔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무역외 수지의 주요 항목인 여행수지마저 9년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소비자들은 외제를 찾고 생산자들 사이에는 『고생스럽게 만들어 팔기보다 수입해서 파는 쪽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번져가고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생산과 소비환경변화는 이런 추세를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이런 사태를 그대로 둔채 무역수지는 개선될리가 없다. 수출증대나 수입억제의 어느 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책수단의 범위가 날로 좁아지고 있긴 하지만 1백억달러의 적자가 내다보이는 이 시점에서 정부는 무역적자의 위기를 국민앞에 선포하고 이에 대처하는 종합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 시급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