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이달의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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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가을의 들목을 들이친 태풍 매미의 영향 탓인가, 올해의 마지막 월 장원을 가리는 백일장 무대가 퍽 허수한 느낌이다. 미발의 쭉정이들 속에 알곡은 턱없이 적다. 그런 가운데 질적인 면에서 한층 두터워진 시조의 저변을 실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입선작들을 만난 것은 의외의 수확이다.

장원에 오른 강순태씨의 '호프집에서 시를 쓰다'는 단연 돋보인다. 초.중.종장의 의미를 각기 한 수씩의 시조로 풀어내면서 미묘한 심상의 풍경을 아우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호프집의 일상적인 사물들을 시적 진실로 변주해 가는 과정이 매우 활달하고 신선한 감흥으로 다가온다. 풀었다 죄고 죄었다 다시 푸는 치밀한 얼개 속에 시종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이 작품이 지닌 강점이다.

변학노씨의 '쓰고 남은 가을볕'과 장지혜씨의 '엄마 생각'은 두 편이 다 전통적인 소재에 착안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행간에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때로 국화꽃 향기처럼, 때로 콩비린내처럼 번져 나온다. 전자가 평소 눈여겨본 토속 정서의 소담한 터앝을 가꾸고 있다면, 후자는 신산스럽고도 환한 어머니의 삶을 깔끔한 수사로 매조지고 있다. 종구라기.나락멍석.맷돌.콩물 같은 시어를 애써 살려 쓴 노력도 높이 살 만하다.

적지 않은 투고자들이 시조의 기본 형식에 무지하다는 것은 새로운 각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많이 쓰는 게 능사가 아니라, 한 편이라도 제대로 다잡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쪽이 더 바람직한 시조 쓰기의 자세라는 점을 강조해 둔다.

<심사위원 이우걸.박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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