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CEO, 박수 칠 때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박수 칠 때 떠나라.'

영화 제목이 아니다. 지난달 29일 하이닉스반도체의 이사회에서 사의를 밝힌 우의제(63.사진) 사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이사회에서 "회사의 재무구조가 좋아지고 경영이 안정이 된 만큼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며 다음달 정기주총에서 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췄다고 하이닉스 관계자가 2일 전했다. 2002년 7월 박종섭 사장 후임으로, 난파된 '하이닉스호'의 선장이 된 그는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운 뒤 2004년 4월 사장으로 재선임돼 다음달 임기 만료를 앞뒀다.

그의 재임 기간 하이닉스는 무섭게 정상 궤도로 질주했다. 때마침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상승 국면으로 돌아선 행운도 따랐지만 혹독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2003년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어 14분기 연속 흑자를 유지했다. 예정을 1년6개월 앞당겨 2005년 7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한 것도 그의 리더십이 작용했다는 평이다. 급기야 지난해 4분기에는 분기별 순이익이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매출 7조5690억원, 영업이익 1조8720억원, 순이익 2조120억원 역시 창사 이후 최고 실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많은 이는 우 사장의 재연임을 예상했다. 36%의 지분을 보유한 외환은행 등 9개사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까지 지낸 그의 유임을 바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정상에 있을 때 물러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는 게 하이닉스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다른 이는 "올해는 우 사장이 1967년 2월 외환은행 공채 1기로 입행한 지 만 40년이 돼 두어 달 전부터 사퇴의사를 내비쳤다"고 전했다.

최근 경기도 이천 공장을 둘러싼 정부와의 마찰을 그의 퇴진과 연결지으려는 시각도 있다. 경기도 이천 공장 반도체 라인의 증설이 불발된 책임을 졌다느니, 하이닉스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는 우 사장에게 채권단이 압력을 행사했다느니 하는 풍문들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하이닉스 관계자는 "우 사장은 '물러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용단을 내린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타의에 의한 사의설'을 부인했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