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폰·IBM 등 다국적 기업-한국에 뿌리내리기 안간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녹아서 하나가 되라.』
다국적 기업인 미 듀폰사의 에드 울라드 회장은 지난 89년4월 회장 취임 후 첫 이사회에서 세계 각지에 나가 있는 듀폰 현지 법인의 사장들을 불러모아 놓고 이같이 말했다.
울라드 회장은 『세계는 갈수록 좁아진다. 앞으로 본사라는 개념은 없다』며 세계 2백50 군데에 설립된 듀폰의 공장들이 그 지역 사회에 「녹아들 것」을 독려했다.
기업의 사활이 현지화 전략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는 판단 아래 세계 각지에 나가 있는 지사의 토착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듀폰은 앞으로 수년 내에 55대 45인 미국 본사와 해외 지사의 매출 비중을 역전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해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실시, 본사 근무 미국인보다 승진을 빨리 시켜주기도 한다.
듀폰의 현지 법인인 한국듀폰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무실마다 태극기를 걸어 놓는가하면 기술직을 제외하고는 본사 파견 직원들을 차츰 본사로 돌려보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비단 듀폰 뿐이 아니다. 한국 IBM은 현지인 사장 임명이라는 본사 시책에 따라 지난 3월 한국 국적으로는 최초로 오창규씨 (47)를 사장에 임명했다. 지난 74년부터 5년 동안 한국계 미국 국적의 최은탁씨가 사장을 맡은 적은 있으나 오씨는 말단 사원으로 인사해 사장까지 오른 최초의 한국 국적 사장이다.
IBM은 특히 회사 내에 「동반자 사업 기획실」을 지난 88년부터 설치, IBM의 한국 내 토착화를 위한 60여 가지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부서의 이름이나 직책을 한글로 바꾸었고 한국식 예의 규범 집을 발간·배포하는가 하면 각종 사회 복지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한반도 슬픈 소리 전집』 『판소리 심청가·흥부가·적벽가』 등 전통 음반을 출반 하기도 했고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자매 결연 등을 통해 우리 사회 속에 깊숙이 스며들려 하고있다.
특히 IBM은 종업원들이 원하기만 하면 월급의 10%이내에서 IBM주식을 살 수 있는데 회사가 전체 구입 금액의 15%를 대주는 방식을 채택, 한국인 고용인들의 주인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미국 지사라는 일반의 인식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최근에는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연구소를 개설, 국내 중소 개발 업체들과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공동 개발, 수출까지 해줄 계획이다.
한국듀폰의 경우도 지난 2월 전 종업원에게 일률적으로 회사 주식 1백주를 나누어주었으며 지난 3월에는 착공 예정인 온산 이산화티타늄 공장 인근 주민들에게 미국 공장 견학 기회를 마련해 줬다.
한국 농촌을 배경으로 한 달력도 제작·배포하고 있다.
공장자동화 설비 판매 업체인 독일계 다국적 기업 한국 훼스트는 색다른 토착화 전락을 추진하고 있다.
자동화 설비 회사라기보다는 자동화 교육 기관처럼 인식될 정도로 81년 진출 이후 국내 업계에 대한 자동화 교육에 주력함으로써 우리 몫을 빼앗아 가는 다국적 기업이라는 일반적 선입견을 씻어내려 하고 있다.
미국 시티은행 한국 지사의 경우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다각화함으로써 한국 내 착근을 시도하고 있다. 연중무휴 24시간 자동 입·출금 시스템의 도입 등이 해외 은행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줄여준다는 판단이다.
다국적 기업들의 이같은 현지화 전략은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남의 돌」만은 아닐 것이다. <이연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