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석에서] 교향곡 전곡 연주 4년 지쳐버린 음악 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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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99년 11월에 시작된 부천시향(지휘 임헌정)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회 시리즈가 오는 29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교향곡 10곡을 완주(完奏)하는 데 걸린 시간은 4년. 지난해 지휘자의 건강 악화로 시리즈가 1년 연기된 것을 감안해도 3~4개월에 한 곡씩 연주한 셈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 내에 한 작곡가의 작품 세계를 비교해 보고 싶은 음악 팬들이라면 지칠 법도 하다.

실내악 무대에서 전곡 연주에 도전장을 낸 연주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15일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전 17곡 연주를 끝낸 '콰르텟 21'(3년7개월.6회)이나 오는 12월 20일 평균율 제2권 연주를 끝으로 바흐 건반음악 전곡 연주 시리즈를 마감하는 피아니스트 강충모(4년8개월.10회), 지난해 4월부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32곡을 완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최희연(3년)씨 등의 경우가 그렇다.

충분한 준비와 연습을 거쳐 무대에 오르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전곡 연주'라 부르기엔 중간 휴식(준비)기간이 너무 길다. 대부분 국내 연주자들이 대학 교수를 겸하고 있어 무대에 자주 설 수 없다는 사정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2년이면 충분하다.

물론 전곡 연주를 짧은 기간 내에 끝내고 싶어도 특정 연주자에게 여러 차례 대관(貸館)해 주는 것을 꺼리는 국내 공연장 풍토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씨는 2001년 9월부터 대한성공회 대성당.호암아트홀.군포시민회관.울산문예회관.제주 한라아트홀 등을 옮겨다니면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를 진행 중이다. 강충모씨의 바흐 시리즈도 영산아트홀.호암아트홀.한전아츠풀센터.LG아트센터.예술의전당을 옮겨다녔다.

이 정도의 우수한 프로그램이라면 국내 유수의 공연장이나 오케스트라들이 기획공연으로 받아들여 1년 이내에 끝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 마땅하다. 전곡 연주는 마라톤에 비유된다. 마라톤 코스를 처음부터 걸어서 완주한다면 전곡 연주의 취지는 퇴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난 6월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 전 6곡을 하루만에 완주한 보로메오 4중주단, 지난 9월 23, 25, 28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10곡을 들려준 바이올리니스트 캐서린 조와 피아니스트 미아 정, 지난달 23, 25일 서울시향과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전 5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공연이 자꾸 떠오른다. 이들 공연은 호암아트홀과 LG아트센터의 기획공연이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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