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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승리 장애인 임종욱 씨|전신마비 딛고 점자책 2백여권 제작 맹인에 등불 밝힌 "조막 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17년째 석상처럼 살아온 전신마비 장애인 임종욱씨(33·부산시 덕천 1동 343).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임씨이지만 그는 또 다른 장애인인 맹인들의 등불이다.
임씨는 85년부터 오그라든 두 손으로 수필집 등 2백여 권을 눈물겨운 인고 끝에 점자로 찍어(점역) 부산 맹인복지회관에 기증, 한편의 인간 승리 드라마를 엮어냈다..
정작 하늘을 찌를 듯한 꿈을 펼칠 두 다리가 필요한 임씨에게 점역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일지 모른다.
지극히 단순한 일이지만 임씨에겐 생명이나 다를 바 없다.
지난 17년여를 병상에 엎드린 채 붙박이처럼 살아온 나날이었으나 요즘 임씨는 하루하루가 가슴 벅찬 기쁨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던 끝없는 절망의 연속에서 임씨도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진하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잃은 자의 잃은 것이 되기보다는/잃은 자의 남은 것이 되고 싶다./꽃을 바치고서라도 거두는/어떤 결실이 아니어도 좋다./지극히 하찮은 것일지라도….』
마라톤 선수를 꿈꿀 만큼 건강했던 임씨가 석상으로 변한 것은 고등학교 입학을 며칠 앞둔 74년 2월.
연탄가스를 마셔 옥상으로 바람을 쐬러 올라가다 2층 계단에서 아래로 떨어져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던 것이다.
부산대학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하는 동안 살던 집마저 치료비로 날렸으나 어깨 아래 부분은 어느 한 곳 움직일 수 없었다.
퇴원 뒤에도 장남 임씨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가족들은 백방으로 뛰었지만 백약이 허사였다.
이때부터 임씨는 길고 긴 장애인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가끔씩 찾아주던 친구들의 발길도 끊기고 라디오만이 유일한 벗으로 임씨 곁을 지켜주었다. 『친구가 없고 찾아오는 벗이 없는 외로운 생활도 괴로웠지만 이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더욱 참기 어려웠습니다.』
임씨는 신자는 아니었으나 자연히 성경을 뒤지고 하느님을 찾게 됐다.
목석처럼 누워 있는 것이 당신의 뜻일지라도 의미 있는 일을 달라고 메아리 없는 기도를 계속 올렸다.
이러기를 수년 째인 85년 3월 어느 날 기적 같이 한줄기 빛이 찾아 들었다.
부산 맹인복지협회에서 맹인들을 위한 점역 작업을 할 봉사자를 찾는다는 라디오 안내 방송이었다.
스스로 뒤돌아 누울 수도 없는 임씨였지만 이 일만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임씨는 배워 보겠다는 뜻을 곧바로 알렸다.
사흘 뒤 찾아온 맹인복지협회 이순옥 이사(45·여)의 도움으로 임씨는 보통 사람이 3∼4개월 걸리던 것을 2주일만에 배울 수 있었다.
『저도 남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쳐가며 연습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부위라곤 어깨 위쪽의 양팔과 왼쪽 엄지손가락이 전부인 임씨는 점필을 두 손바닥 사이에 끼우고 맹인들에게 등불을 밝혀 나가듯 한 자 한 자 찍어 나갔다.
엎드린 채 체중을 모두 팔꿈치에 받쳐 하루 10시간 이상 계속되는 중노동이어서 마침내 양 팔꿈치가 헐어 피고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씨는 이 일을 한번도 힘들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만든 점차책을 읽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6개월이 지날 무렵 임씨의 양 팔꿈치는 아예 굳은살이 박여 버렸다.
임씨가 찍어내는 양이라야 보잘 것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1장 만드는데 7∼8분 걸리지만 임씨는 하루종일 만들어도 15장 안팎이다.
이런 임씨가 지난 7년간 살을 깎는 산고 끝에 점역한 책은 현재 작업중인 막심 고리기의 장편소설 『어머니』를 비롯해 수필·시·소설 등 무려 2백여 권에 이른다.
지금까지 부산에선 고문을 점역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임씨가 점역해 낸 책으로 공부한 맹인 수험생이 지난해 대구대에 합격해 임씨를 더욱 기쁘게 하기도 했다.
임씨가 손바닥 사이에 점필을 끼워 쓰게 된 것도 눈물겹도록 처절한 노력의 결과였다.
편지 한 장도 동생들에게 맡겨 써오다 자신만의 비밀로 남겨두고 싶은 내용이 자연히 생기게 돼 80년 초부터 스스로 써야만 했다.
볼펜을 오그라든 손가락 사이에 끼워 써보기도 하고, 볼펜을 아예 손바닥에 묶어 보기도 했다.
제법 또박또박 쓰게 되기까지는 1년여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비록 전신마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정상인이라 한들 자기에게 닥쳐올 불행에 맞서지 못하면 그 사람이야말로 저보다 더한 전신마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임씨의 정성에 감동했음인지 87년 크리스마스 땐 임씨에게 무려 13년만의 「눈부신」 시내 외출의 기회가 주어졌다.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임씨의 외출에는 12인승 봉고 차를 비롯, 비뇨기과 의사 등 10여 명의 수행원이 동원됐다.
『그 언제였던가 저쪽 바깥 세상을 마지막 본 것이.…이 다섯 시간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 순간이었다.』
임씨의 인간 승리의 소식을 전해들은 여류시인 안혜초씨(48)도 청년 임종욱에게 영혼의 울림과도 같은 사랑의 편지를 띄우기 시작했다.
『45년이란 긴 세월동안 이처럼 나의 가슴을 울린 적이 없었습니다…87년 새해에 서울에서 안혜초 드림/.』
『조금은 미워지는 누님께. 오시겠다던 4월은 다 지나가는데…기다림에 지친 나의 목은 기린이 됐습니다…부산에서 종욱올림.』
지난 4년여간 두 사람이 주고받은 4백여 통에 이르는 편지가 최근 『내 안의 또 한사람』이란 책으로 출판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임씨는 장애인 생활수기 공모에서 「나의 꿈」으로 우수상을 받았고, 월간문화 등에 응모, 3번이나 최종심사까지 갔다가 떨어지기도 한 프로급 시인·수필가다.
임씨는 오늘도 병상에 엎드려 석상처럼 굳은 몸으로 맹인들의 등불을 밝혀 나가고 있다.
【부산=정용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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