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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내년 경기 회복된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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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내년 경기는 좀 나아지는 거요?

연말이 다가오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글쎄, 시원한 대답이 예비돼 있다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으니 탈이다. 아니, 지금 같아선 내년만 아니라 내후년도, 또 그 다음 한해도 솔직히 걱정이다.

일부에선 내년 성장률이 수출을 중심으로 올해보다 높아지리라는 것을 근거로 경기가 조금이나마 회복세를 탈 것이라고 한다. 이미 바닥을 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그건 경기의 패러다임이 이미 바뀌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하는 소리들이다.

내년 이후 경기를 짚어보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는 수출이 좋아진다고 투자.소비가 따라서 좋아진다는 법이 없다. 수출이 전체 성장률을 올릴 수는 있어도 실업률은 좀체 떨어뜨릴 수 없다. 고용이 크게 늘지 않으니 내수도 좋아질 리 없다. 수출을 중심으로 잘 나가는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 간 괴리는 더 커질 것이다. 자산 소득과 근로 소득의 격차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 양극화는 산업.기업.직종.개인 간에 더욱 심화된다. 결국 분배는 더 악화된다.

왜 그런가.

세계 경제가 좋아지면서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도 반도체.휴대전화.LCD 같은 품목은 주문이 밀려 수출 물량을 나라별로 할당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수출에서 잘 나가고 있는 산업은 사람을 많이 쓰는 산업이 아니다. 돈을 벌면 생산성을 더 올리는 데 투자해야지, 고용을 크게 늘렸다간 큰일 날 산업이다. 이젠 성장할수록 고용이 줄어드는 산업도 나올 것이다. 또 이들이 투자하기 위해 사오는 기계는 아직 외국산이 많다.

반면 사람을 비교적 많이 쓰는 산업은 이미 상당수 중국으로 갔거나 가려 하고 있다. 그러니 수출과 투자.내수.고용이 따로 놀지 않을 수 없고, 수출 때문에 성장률이 올라간다고 좋아할 때는 갔다는 것이다.

고용이 늘지 않는데 분배가 개선될 리 없다. 재산세 올리는 것은 조세정의에 맞는 당연한 방향이지만 근본적인 분배 개선책은 아니다.

일부 수출이라도 잘 되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그러나 지금 같은 경기 패턴이 지속되는 한 양극화는 심화되고 사회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으며 분배는 더욱 악화될 것이 뻔히 눈에 보인다.

그럼, 대안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이미 숱하게 거론돼온 것들이 다 대안이다. 노사 평화를 이루자, 규제를 완화하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자, 내외국인 가리지 말고 투자를 일으키자, 일자리를 만들자,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이 되자 등등.

그러나 10년 전에도 나왔던 이런 소리들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큰 비극이다. 그런 와중에 경기의 패러다임은 보다시피 이미 바뀌었다. 노령화와 저출산은 시한 폭탄으로 다가오고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이 될 기회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중국.일본.싱가포르 수준의 기업환경을 만드는 것도 벅차지만, 이젠 그네들 이상의 수준을 만들어놓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

연말이 다가오며 많이 듣는 질문들은 더 있다.

재신임은 어떻게 되는 거요? 정치자금 수사는 어디까지 가는 거요?

중요한 질문들이다. 그러나 답을 모른다. 지금 판이 과연 정치개혁인지, 그저 정쟁(政爭)인지 갈수록 헷갈리고 변수가 너무 많아 앞이 잘 안 보인다. 그래도 판세 읽기에 다들 열심이지만 결국 경제 쪽에선 잘 하면 투명성 하나 건질 것이다. 그나마도 어디냐마는, 자칫 다 실기(失機)한 뒤에 투명성 깃발 하나 붙들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수길 기획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