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대신 경제를 택한 고르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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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동안 연례행사로 여겨져 왔던 G7정상회담이 올해에는 국제정세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획기적인 틀을 제시했다.
통상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경제·정치문제에 덧붙여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초대되어 경제협력방안이 논의되고 자본주의 세계와의 단계적 접목방안이 마련됐다는 점이 우선 두드러진다. 서방 7개국 정상들이 발표한 6개항의 소련경제 지원방안은 지난날 대결의 그늘을 뛰어넘을 수 있는 첫 구체적 결실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덧붙여 두드러진 것은 G7 모임에서 만난 미소 지도자들이 전략무기 감축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 합의는 기본적으로 소련측이 서방측의 경제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핵분야에서 크게 양보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핵전략무기협상이 상한선을 제시하고 그 범위내에서 질량적인 군비경쟁을 가능하게 했던데 비해 이번 합의는 처음으로 실질적인 감축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는 미소관계는 물론 앞으로의 세계질서가 구체적이고도 근본적으로 질적인 변화기에 접어 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력대결서 경제협력 방향으로 구조적인 방향전환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시 미국대통령의 『동서관계에 있어 역사적인 날』이란 평가는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상당히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그 평가의 계속 유효여부는 앞으로 미소를 비롯,모든 나라가 이 틀이 깨지지 않도록 얼마나 진지하게 실천해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소련이 동구를 영향권에서 떼어낸 이래 세계질서는 긴장완화와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면서 다변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국지적으로는 무력분쟁이 돌출해왔고,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여러곳에서 예견되고 있다. 그런 불안요소를 줄이는 것은 무력의 사용을 자제하고 군비를 축소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군사적으로 국제질서에 큰 영향을 갖고 있는 미소의 군비축소가 세계적인 추세로 다른 나라들에도 규범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군비축소에 따른 이점은 물론 1차적으로 전쟁의 규모와 가능성을 줄여 평화로운 세계에 살 수 있다는데 있다. 평화로운 세계에서의 군비증강은 경제적인 낭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군비에 쏟아붓던 자원과 노력을 경제발전과 복지로 돌릴 수 있게 됨으로써 생활은 윤택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와 무관할 수 없다. 아직도 냉전분위기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민족 모두의 번영과 평화로운 삶에로의 노력에 G7에서 나타난 큰 흐름은 그런 외부여건을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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