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친 집값' 잡으려 연기금까지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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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31 부동산 대책'은 '민심 달래기용' 성격이 짙다. 기관투자가와 연기금을 동원해 임대주택을 짓되 모자라면 재정으로 메워준다는 발상이 그렇다. 평형은 키우고 임대료를 낮췄으니 재정 손실이 불가피하다. 당장 재정을 동원했다간 '대선용'이란 비판을 받을 수도 있어 이를 기관투자가들에 슬쩍 떠넘겼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또 정부는 수백만 가구의 임대주택을 짓기 위해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공사 등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민간 주택 공급이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1.11 대책'을 내놓으면서 분양가 상한제나 분양원가 공개제 등을 도입해도 민간 건설사들의 주택 공급이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친 지 20일 만에 민간 공급 위축분을 공공주택으로 메우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특히 국민임대주택과 분양 주택을 짓는 주공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비축용 임대주택의 상당수는 토공이 전담해 건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 조성 사업만 하던 토공까지 주택 건설에 뛰어들도록 한 것이다.

◆ 임대주택 확대는 민심 달래기용? =정부는 지난해 말 현재 80만 가구인 임대주택을 2017년까지 340만 가구로 늘려 총주택 중 임대주택 비율을 6%에서 선진국 수준인 20%로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0년간 임대 후 단계적으로 분양하는 비축용 장기임대주택 등을 통해 임대주택만 155만 가구를 추가로 공급한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면서 "이제는 부동산정책의 중점을 서민.중산층의 주거복지 향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의 속내는 집값 급등에 따라 내집 마련의 기회를 놓친 서민.중산층을 달래기 위한 것이란 게 시장의 평가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집값 급등에 따라 상당수의 중산층이 내집 마련의 기회를 놓쳤다"며 "정부가 30평형대 임대아파트 공급을 크게 늘리기로 한 것은 이들 계층에 대한 배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비축용 임대아파트의 주 수요층을 소득이 전체의 40~60%(4~6분위)에 해당하는 중산층에 맞추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기준 4분위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2745만원, 6분위는 3678만원이다.

민심 달래기용인 만큼 임대료도 낮다. 30평 기준으로 할 때 입주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보증금 2500만원에 월 임대료는 52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4월 주택공사가 판교에서 임대한 30평형이 임대보증금 1억2000만원, 월 임대료 49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 재정부담이 문제=비축용 임대주택을 짓기 위한 임대주택펀드의 재원은 국민연금.우체국 등 기관투자가의 융자금으로 충당된다. 정부는 이들이 쉽게 융자할 수 있도록 국고채 유통수익률에 일정액의 가산금을 얹은 수익률을 보장해 주기로 했다. 또 원금에 대해선 2019년 이후부터 임대아파트를 매각한 2028년 원금을 모두 갚는 구조다. 하지만 정부는 임대수입만으론 수익률을 보장해주기 어려워 매년 5000억원씩 모두 8조원의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결국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절반은 토공 등이 현금으로 출자하기 때문에 재정 지원은 13년간 4조원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대주택이 외면받을 경우 정부의 재정지원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임대주택을 짓기 위한 토지 가격이 계속 상승하거나 정부가 예상한 가격에 임대주택을 매각하지 못했을 때도 문제가 생긴다.

김준현.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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