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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커버스토리] 벨리 댄스에 빠진 김주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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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야 1분이었다.

거실을 지나던 김주희(30.사진)씨가 가족들이 보고 있던 TV에 눈길을 뺏겼던 시간은 고작 그 정도였다. TV 프로그램 진행자가 말했다. "지금 이 화려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을 굳혔다. 지난해 10월. 그는 우울했다. 광고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한 지 6년, 하루 종일 컴퓨터 자판과 숫자만을 들여다보는 생활에 좀 지쳐있었나 보다. 반복적인 컴퓨터 작업 탓에 생긴 목.어깨의 통증은 몇 달째 계속한 물리치료로도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다. 스물 아홉 처녀,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배꼽춤이라고도 불리는 '벨리 댄스'를 알게 된 것이 그때다. 배꼽을 드러낸 화려한 터키.이집트풍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어깨.가슴.엉덩이를 흔들며 추는 춤이 벨리 댄스다.

"신기하죠? TV에서 잠깐 봤을 뿐인데 '저거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말이라 회사일도 바쁘고, 막상 배우러 가자니 선뜻 자신감이 생기지도 않고 해서 두 달을 망설였다. 더 뭉그적거리다간 영영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낸 것이 올 1월이다.

"모든 게 달라졌지요."

춤을 시작했더니 뭐가 가장 좋더냐는 질문에 김씨가 '짧게' 답한다. 좀 자세히 말해보라고 채근했다.

"일단 목.어깨 통증이 씻은 듯 사라졌고요. 땀을 흘리니까 잠도 잘 오고요. 허리 군살까지 쏙 들어가던데요."

매주 1시간씩 석달간 초급반 과정을 배우며 그가 맨 먼저 느낀 것은 몸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다른 운동이나 춤에 비해 발 동작이 많지 않고 격렬한 전신 동작이 없는데도 운동 효과가 상당했다.

"몸에 볼륨이 전혀 없어 별명이 '젓가락'이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석달 만에 젓가락에 곡선이 생겼다'며 놀라더군요."

몸이 달라지자 마음도 달라졌다. 전에는 망설였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자신있게 입게 됐다. 그만큼 생활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일단 자신감이 생기자 웃는 일이 많아졌다. '뭐 좋은 일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회사 일의 능률도 크게 올랐다. 늘 아프다고 끙끙대던 사람이 활력을 찾고, 몸매까지 달라지는 것을 본 김씨의 친구들도 앞다퉈 벨리 댄스를 시작했다.

그가 춤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한 것은 초급반 과정이 끝나고 백화점 문화센터 무대에서 가진 작품 발표회에서다. 그는 "섹시한 의상과 아름다운 춤을 보며 입을 떡 벌리는 사람들 앞에서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무대에 한 번 선 뒤 그는 '평생 춤을 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른 사람들과 춤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강사 과정에도 등록했다. 4월부터 지금까지 평일은 퇴근 후 2~3시간씩, 주말은 6~7시간씩 땀을 흘렸다. 실력을 인정받아 몇달 전부터는 주말에 초급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제가 가르치는 사람의 대부분이 처음에는 체형을 가리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옵니다. 하지만 두세번째 시간만 돼도 짧은 상의에 딱 붙는 바지를 입고 오는 분들이 늘거든요."

그는 "춤은 나르시시즘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몸과 감정 상태가 고조될수록 동작도 더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더 빠져들게 되고, 그만큼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벨리 댄스의 경우 약간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다 보니 스스로의 몸을 사랑하고 가꾸려는 의지가 훨씬 강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씨는 week&의 인터뷰 제의에 몇 번을 망설였다. 부모님과 가까운 친구들은 그가 벨리 댄스를 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회사 동료들에겐 아직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왕 회사에 춤춘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으니 이 참에 선후배.동료들에게 벨리 댄스 '전도'를 시작할까 해요."

4시간 넘게 진행된 사진 촬영 내내 김씨가 한번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그에겐 춤이 곧 '웃음의 묘약'인 듯하다.

벨리 댄스=터키에서 유래해 이집트 등지로 퍼져나간 춤. 스페인의 플라멩코 등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 무용박람회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서구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팝가수들도 안무에 이 춤을 응용하고 있다. 1990년대 말 국내에 처음으로 본격 벨리 댄스를 소개한 안유진 밸리댄스코리아(www.bellykorea.com) 단장은 "다른 춤에 비해 보폭이 좁고 발동작이 적어 몸치 탈출 클리닉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 교습소나 백화점.언론사 문화센터, 인터넷 동호회 등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수강료는 교습소를 찾을 경우 주1회 기준으로 월 8만~10만원선. 안유진 단장이 직접 가르치는 중앙문화센터(02-2000-6011~4)의 경우 3개월에 12만원이다.

글=김선하 기자
사진=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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