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유통시장 대응 싸고 가전·유통업계 입씨름|양판점체제 된다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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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가전양판점(GMS)이 유통시상의 주도권을 쥐게되면 국내 가전업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되므로 메이커가 주도하는 대리점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가전업계)
『양판점은 어차피 세계적인 흐름이다.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서는 여러 회사의 제품을 함께 파는 양판점 체제의 도입이 시급하다.』(한국 가전대리점협회)
l일 유통시장 개방과 함께 국내 가전·유통업계가 양판점 체제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려 진통을 겪고있다.
앞으로 일본의 대형 양판점들이 잇따라 진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이에 대비, 기존의 대리점을 대형화시켜 대응해야 한다는 가전업계의 입장과 양판점 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일부 대리점 및 유통업체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삼성·금성서 반대>
기존의 대리점체제를 계속 끌고 나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있는 업체는 우리 나라의 가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금성사 등이다.
두 회사는 일본의 대형 양판점들이 국내에 진출하면 영세한 국내 대리점들이 잇따라 도산, 결국 제조업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회사는 기존대리점을 대형화·전문화시켜 일본의 양판점에 맞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다시 말해 메이커와 몇 개의 대리점을 묶어 자본력을 키우고 점포를 대형화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금성사가 가전양판점 체제의 도입을 꺼려하고 있는 것은 양판점에서 국내 가전제품이 일본 제품과 나란히 전시될 경우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데다 메이커가 유통업체에 끌려다니다 보면 메이커끼리의 출혈경쟁으로 생산기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영구유통기획부장은 『미국의 가전업체들이 일본의 시장공략에 손쉽게 무너진 것은 양판점체제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우리 나라는 한 회사 제품만을 판매하는 기존의 대리점 체제를 강화시켜 일본업체의 진출에 맞서야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가전업계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양판점보다 이들 유통업체를 앞세운 일본 가전업체의 한국시장 공략이다.

<대우는 이원화 전략>
금성사의 한 관계자는 『한국업체가 세계 가전시장에 남아있는 일본업체의 유일한 경쟁상대인 점을 감안할 때 한국 가전산업 기반의 약화를 노린 일본업체와 양판점의 국내 진출이 예상된다』밝히고 『특히 국내에 진출하는 일본 양판점은 일본업체의 동남아·미국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유통창구로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국내 2백여개 대리점 모임인 한국 가전대리점협회측은 『우리 나라의 낙후된 유통시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리점 체제에서 벗어나 여러 회사의 제품을 함께 팔 수 있는 종합 매장체제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대우전자는 대리점 체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한국 신용유통 주식회사의 설립을 통해 가전양판점 「하이마트」의 매장확대를 서두르는 등 2원화 전략을 꾀하고 있다.
하이마트는 현재 서울 사당동·용산 전자랜드 등 네군데에 양판점을 개설했는데 2∼3년 후에는 20여개로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마트 외에도 한국 가전대리점협회 김재홍회장 등 대리점업자들이 전국에 20여개의 양판점을 개설했거나 추진중이다.
그러나 하이마트 등 양판점은 삼성·금성의 제품이 전시되지 않아 양판점으로서의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두 회사가 대리점의 대형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공급계약을 맺은 대리점 이외에는 물건을 출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종합매장에서는 소매자들이 여러 회사의 제품을 비교해 싼값으로 살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의 경쟁을 부추겨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하고 『대기업이 유통소매업까지 장악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 l일부터 유통시장 개방이 확대됐는데도 업계의 이해가 엇갈리고 정부의 대응책마련이 늦어져 시장개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대응책 마련을 소홀히 함으로써 시장개방 2년만에 가전산업이 침몰해버린 대만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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