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미국의 탈당, 한국의 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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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탈당은 유권자에 대한 배반이다. 많은 유권자가 당을 보고 찍는다. 어떤 이가 국회의원이 되는 건 당의 덕분이 크다. 그래서 후보는 공천에 목을 매는 것이다. 특히 별로 알려지지 않은 초선의 경우 당은 더욱 중요하다. 부모가 있어 내가 있듯 당이 있어 자기가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미국에서 탈당은 매우 드문 일이다. 2001년 출발한 조지 W 부시 정권은 50대 50(공화 대 민주)으로 상원의 균형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5월 공화당은 상원을 잃고 말았다. 북동부 버몬트주 출신 제임스 제퍼즈 의원이 탈당한 것이다. 67세의 제퍼즈 의원이 당을 떠나 무소속이 되는 바람에 상원의 대표와 20개 위원장은 민주당이 독식하게 됐다.

탈당 이유는 공화당 정권에 대한 실망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대선 때 서민층과 진보적 이슈도 아우르는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공약했으나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퍼즈 의원은 당 지도부에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을 떠난 것이다. 그의 탈당은 1명이 움직인 것이었지만 세계사적 여파를 낳을 수도 있었다. 막 출발한 부시 정권은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축과 새로운 국방정책, 핵발전소 증설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 정책, 사회보험 개혁안 등에 정력을 쏟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상원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공화당, 언론과 유권자는 차분했다. 부시와 당 지도부는 "탈당에 반대한다"고 했을 뿐 제퍼즈를 비난하진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는 몇 가지를 빼놓고는 대선 약속보다 덜 중도적(moderate)이었으며 제퍼즈의 탈당으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논평했다. 지역구 버몬트주에서도 "지역구를 팔아먹은 자" 같은 반응은 거의 없었다. 제퍼즈의 놀랄 만한 탈당에 미국 사회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제퍼즈의 명분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의 정치사에서 탈당은 여름밤의 불나방처럼 허공을 날아다녔다. 당에 정신적 뼈대가 없거나, 갑자기 당세가 기울거나, 여당을 하다가 야당이 되면, 대가 약한 의원들은 당을 떠나곤 했다. 1985년 2월 총선에서 '5공의 관제(官製)야당' 민한당은 몰락했다. 의원들은 펭귄처럼 줄을 서서 양김의 신민당으로 갔다. 93년 집권한 YS(김영삼)는 대선 라이벌이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국민당을 압박했다. 의원들은 당을 떠나 기러기떼처럼 여당으로 날아갔다. 98년 DJ(김대중) 정권은 약점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잡아당겼다. 의원들은 하나둘씩 당에서 뛰쳐나와 여당으로 뛰어들어갔다.

한국 역사에서 최대의 당적변경 사태는 90년 3당 합당이었다. 초선의원 노무현은 이에 반대해 오늘날 대통령이 돼 있다. 그런 그가 2003년 민주당의 집단탈당을 독려했다. 열린우리당의 탄생이었다.

이제 바로 그 당에서 한국 정치의 오랜 탈당의 역사가 재연되고 있다. 실용보다는 엉성한 개혁 쪽으로 너무 치달아 당이 몰락하고 있는데도 대표적인 개혁파 초선이 "당이 재벌편을 든다"는 희한한 이유를 대며 뛰쳐나갔다. 3년여 전 지금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민주당을 버릴 때 당을 지키려는 여성당원이 탈당파 여성의원의 머리채를 잡아당긴 일이 있었다. 앞으로 이런 광경이 또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마치 신차출시(新車出市) 주기처럼, 5년 정권마다 반복되는 한국 정치의 탈당. 자신들의 이름 아래에선 모든 게 새로운 것처럼 외쳐대던 이 정권에서도 결국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탈당하는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떠날 일이다.

김 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