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시집(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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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비디오는 세계적으로 텔리비전을 제외하고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비디오가 생활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10년간 비디오산업은 급속히 발전해 VTR의 보급대수가 4백만대를 넘어섰다. 이것은 70년대후반의 TV수상기 보급률과 거의 맞먹는 숫자다.
그만큼 비디오는 어느덧 막강한 미디어로 우리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비디오가 이와 같은 엄청난 문화의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비디오문화를 올바른 시민문화로 수용할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음은 그동안 수거한 각종 불법·음란비디오의 숫자만으로도 알 수 있다.
국내 비디오시장의 95%를 차지하는게 영화인데 그 영화의 50%이상이 공륜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불법비디오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의 일각에서는 건전한 비디오보급운동과 함께 좋은 비디오 만들기 캠페인이 일고 있어 반가운 일이다.
YMCA가 주관하는 「건전한 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그동안 불법·음란비디오 추방운동을 줄기차게 벌여온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민이 뽑은 좋은 비디오 1백선』이란 책자를 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90년 1월부터 91년 3월까지 사이에 만들어진 비디오 중에서 세계관의 확대,현대사회와 가족등 13개 주제를 내걸고 주제별로 뽑은 이 1백선에는 『길소뜸』『기쁜 우리 젊은날』같은 우리 영화도 보이지만 그 편수가 5,6편에 불과하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폭력과 외설을 배제한 건전한 우리 비디오가 그만큼 드물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 점에서 28일 오후 한국필름보관소 시사실에서 선보인 한편의 영화는 많은 문화계 인사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제목은 『만해 한용운 영상시집』.
여류감독 한옥희씨가 연출을 맡고 서울 커뮤니케이션이 기획,문화부가 후원한 이 40분짜리 영화는 만해의 『님의 침묵』『군말』등 15편의 주옥같은 시를 아름다운 영상에 담은 그야말로 한권의 시집이다.
이 영상시집은 앞으로 김소월,윤동주 등의 시도 영상화할 계획인데,영리를 떠난 이 사업은 바로 건전한 비디오문화를 이끌기위해 기획된 것이라 하니 가상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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