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초요<楚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가는 허리=미인'이라는 요즘 고정 관념의 중국식 유래는 무엇일까. 당(唐)대까지만 해도 중국인의 미인에 대한 관념은 풍만함이 주도했다. 하지만 송(宋)대에 들어와 풍만한 미인형은 사라지고 가는 허리의 날씬한 미인이 나타났다는 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 원형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戰國)시기 초(楚)나라 영왕(靈王)은 미적 관념이 좀 유별났다. 튼튼한 사람보다는 날씬한 사람을 더 평가했다. 특히 그는 가는 허리를 좋아했다고 알려진다.

문제는 그의 개인적인 기호가 전국에 유행처럼 번졌다는 점이다. 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를 호위하는 무사(武士)를 비롯해 고위 관료들도 절식, 요즘 말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는 것. 급기야 여성들에게도 옮겨 붙어 궁녀는 물론이고 전국의 여자들이 모두 다이어트 바람에 휩쓸려 들어갔다.

이를 전하는 '전국책(戰國策)'의 기록을 보면 "굶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이 핑핑 돌아 제대로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나와 있다. 또 자리에 섰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서려면 벽에 기대 몸을 일으키는 게 다반사였고, 마차에서 나오려는 사람도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밖으로 나설 수 없었다고 기술돼 있다.

미인의 날씬한 허리를 일컫는 '초요(楚腰)'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당대를 지나 송대에 접어들면서 중국 미인들의 허리는 점차 가는 형태가 우선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미인의 허리를 일컫는 말로 말의 뜻이 변했지만 원래는 최고 자리에 있는 통치자의 기호가 무수한 백성에게 그대로 나타나 결국 나라를 망친다는 뜻이다.

초요 외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지나칠 정도로 '용기'에 관한 미덕을 좋아하자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게 됐다는 내용도 있다. 아울러 진(晋)의 문공(文公)이 가죽옷을 좋아해 양피 가죽의 옷이 전국의 유행을 탔다는 고사도 전해 내려온다. 한결같이 최고 권력자의 기호가 유행으로 번져 국가를 망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특별연설을 통해 나타난 '남 탓'은 이제 대통령의 감추기 힘든 기호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 남 탓 열풍을 가져올지 모르겠다. 남을 겨냥한 대통령의 말들이 우리 사회에서 거듭 이념과 정파적 갈등을 일으켜 왔던 것을 보면 이는 이미 물 건너간 걱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라도 대통령이 남 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