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40. 마드무아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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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발렌시아가 옷은 치마폭이 좁아 종종걸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을 스케치했다.

1950년대의 샹젤리제 거리는 나에게 많은 추억이 서린 곳이다. 일요일 오전에 불어 과외가 끝나면 나의 불어 가정교사이자 친구였던 아이린에게,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하고 옷장을 열어 보여 주면서 물었다.

아이린은 다른 옷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 "저거!"하고 발렌시아가의 '잠수함' 수트를 가리켰다. 나는 그 수트에 어울리는 모자도 하나 장만했다. 흰색 리넨에 레이스가 살짝 달린 챙이 있는 모자다. 그리고 홍콩에서 산 흰색 대나무 핸드백에 손목까지 오는 흰색 장갑을 끼고 코가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는 거리로 나섰다.

치마 폭이 좁고 트임이 전혀 없는 맥시 스커트여서 당연히 보폭이 좁았고, 따라서 나의 걸음걸이는 느려졌다. 이런 차림에다가 얼굴의 3분의 1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면 길을 가던 파리의 노신사들이 모자를 벗고 "마드무아젤 정말 멋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노천카페에서 서빙을 하던 웨이터들도 내 모습을 보느라 따르던 커피를 흘릴 정도였다. 쇼윈도를 구경할라치면 어느 새 내 뒤를 둘러싼 남성들 때문에 쇼윈도 유리창에 남자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게 반사되어 비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웃기도 했다.

당시 파리 시내에 동양 여자는 정말 보기 드물었다. 아마도 그같은 호기심이 더해져 나에게 관심들을 보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던 어느 날 샹젤리제 거리를 건너다가 보폭이 좁은 내 걸음걸이가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있다.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고 있는데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지선에 서 있던 차들이 정지한 채로 서있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걸음을 빨리 재촉하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운전자들의 기색을 살폈는데, 운전자들은 미소 띤 얼굴을 핸들에 올려놓고 내가 종종걸음을 치며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하며 가능한 한 빨리 걸어가려 애썼다. 겨우겨우 길을 다 건넜을 때, 건너편에 있던 교통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파리의 교통 경찰관은 예의 바르게 나에게 말을 건넸다.

"마드무아젤, 당신이 지금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을 아시나요?"

"어머, 죄송합니다. 제 치마 폭이 좀 좁아서요."

미안한 표정으로 내가 대답했더니 경찰관이 웃으면서 "당신, 이번이 처음이 아녜요. 여러 번 당신이 길을 건너는 것을 지켜봤어요. 당장 집에 가서 치마 옆을 터서 입도록 해요"라고 '경고'했다.

나는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스커트 양 옆을 터서 웬만한 걸음이 가능하도록 그 스커트를 수선했다. 요즘처럼 바쁜 시대라면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욕설을 퍼부어 댔을지도 모를 사건이지만 당시는 안그랬다. 당시 파리의 운전자들은 내 실수를 예쁘게 보아주고 정지선에서 웃으며 기다려 주는 낭만과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옛날의 '그 파리'가 늘 그립다.

노라 ·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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