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련 입장 사실상 수용/김 추기경 공권력거부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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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종교계·재야 압력이 크게 작용/검·경선 강씨 검거방안에 골몰
범국민대책회의 철수시한 최종일인 15일 발표된 김수환 추기경의 공권력 투입 반대원칙은 그동안 당국과 농성자 사이에서 뚜렷한 입장을 유보한채 중재에 주력해온 가톨릭이 처음으로 태도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명동성당측은 김추기경의 입장표명 이전까지는 『농성자들이 약속한 농성시한인 15일이 지나면 공권력투입 자제를 요청할 명분이 없다』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다.
이는 농성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신변보호에 책임질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됐고 자진철수를 유도하기 위한 간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추기경은 이날 『15일 이후에라도 어떠한 형태의 공권력투입에도 반대한다』고 말해 당국이 가질 수 있는 선택의 폭을 크게 좁혀놓았다.
당국은 그동안 가톨릭의 입장과 여론의 향방을 공권력투입 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 고려해야할 최대의 변수로 생각해왔다.
따라서 공권력 투입에 대한 추기경의 무조건적인 반대의사는 사실상 「넘어설 수 없는 산」으로 등장한 셈이다.
김추기경은 또 경갑실 수석보좌 신부의 입을 빌려 대책회의가 15일 철수키로한 약속을 어긴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철수를 재차 촉구했지만 강기훈씨(27)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는 대책회의 간부들과 강씨의 문제를 별개로 놓고 강씨의 신변보호를 요청한 「전민련」측의 입장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강씨는 가톨릭교회와 추기경의 권위라는 막강한 보호막아래 스스로 결심이 설때까지 은신할 수 있게 됐다.
대책회의의 농성에 대해 줄곧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해오던 김추기경이 강씨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30일 강씨로부터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는 서한을 받은 뒤부터로 알려졌다.
김추기경의 지시로 소집된 「정평위」는 12일 강씨에게 자진출두를 권유하고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강씨에 의해 거부됐다.
이어 정의구현 전국사제단·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등 종교계 재야단체들이 강씨의 결백을 주장하며 「정평위」의 자진출두권유가 검찰의 공정수사를 확실하게 보장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비인도적 조치라며 비난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재야운동권에 큰 영향력을 가져온 김추기경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강씨의 인권을 보호하기위해 공권력과의 마찰까지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추기경의 결단에는 가톨릭의 위신실추를 가져올 성당내 공권력투입이라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도 포함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추기경의 단호한 의지가 알려지자 검·경찰은 진의파악에 나서는 한편 공권력의 투입없이 강씨등 농성자들을 검거할 수 있는 묘수를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대책회의」 입장에서는 가톨릭과 추기경의 부담을 덜어주어야할 과제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가톨릭도 공권력투입 반대 방침을 정했지만 중재역할을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추기경의 결단이 오히려 평화적인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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