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추모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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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는 읽는다 너는 가고

네가 남긴 책갈피에서

머리카락이

아침 국그릇에 떨어졌다

호수처럼 국물이

출렁, 하더니

곧 잠잠해졌다


누구의 머리카락이었을까. 네가 가고 내가 읽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너는 누구였을까. 사랑의 빈자리는 넓기만 합니다. 사랑이 머물다간 흔적을 머리카락 한 올이 지탱하고 있습니다. 더럭, 터럭 한 올이었겠습니다. 그래도 산다는 건, 국 국물에 빠진 네 머리카락 한 올 건져내고 식은 국 국물을 떠먹는 일입니다. 국그릇에 밥을 통째로 말아 북북 떠먹는 일입니다. 둘이서 먹었던 밥을 혼자서 온전히 먹어내는 일입니다. 너의 흔적까지 깨끗이 먹어치우는 일입니다. 아프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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