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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들의 '홈피 경영'…클릭 시간 쪼개 세상과 '소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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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허태학, 남중수, 유현오

이코노미스트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홈피)는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무대’이자 네티즌과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다. 볼 것 많고 편안한 장소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이는 ‘주인장’의 노력이나 내공에 달려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경영’하는 홈피는 어떨까? 몇몇 CEO의 홈피는 사원과 고객들로 북적이지만 대개는 ‘개점 휴업’ 상태다. 비서실이나 홍보담당 직원이 대신 관리하는 ‘이름만 개인 홈피’인 사례도 더러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홈피를 묵혀두기 때문이다.

재계의 총수는 물론 전문경영인까지 ‘홈피 만들기 바람’이 분 것은 2000년대 초반. 5년여가 지난 지금 재계의 홈피 경영은 뚜렷하게 성적표가 나뉜다. 적극적인 행보로 재계의 이슈 메이커가 되는 CEO들은 ‘홈피 경영’에서도 단연 앞서간다.

홈피 주인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CEO를 만나본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 홈피를 운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허태학 ‘지식의 나눔터’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은 ‘서비스 전도사’로 유명하다. 홈피와 인연을 맺은 것도 삼성에버랜드 대표로 있을 당시 ‘서비스 아카데미’를 열면서부터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서비스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평소의 지론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홈피를 개설했다. 언제든지 고객이나 사원과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의 경우 사장실 한 번 오려면 절차도 복잡하고 어렵지 않겠습니까? e-메일 한 번이면 저와 직접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홈피를 열게 됐지요.”

조직 생활에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 사장은 “실질적으로 상하관계가 있는 이상, 말단 직원이 CEO와 직접 대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삼성석유화학이 모든 결재서류를 e-메일로 주고 받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허 사장의 홈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열린 광장의 ‘서비스 아카데미’ 코너다. 2003년 말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글을 올려놓았다. 요새는 와인 이야기가 부쩍 늘었다.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를 직접 방문해 와인의 역사와 맛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노력한 것을 엿볼 수 있다.

“혼자서 알기엔 너무 아까운 지식이다. 와인 같은 경우에도 잘 알아두면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직접 글도 쓰고 사진도 찍어 여행기를 만들었다. 미국 나파밸리, 프랑스 보르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명물 와인 등을 소개하고 있어 와인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방문해 볼 만하다.

그의 홈피에는 사진보다는 글이 많다. 허 사장은 “글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다”며 “아무리 바빠도 싫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홍보성 홈피가 아니라 자신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인 만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홈피를 통해 경영에 대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을 때 기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팬도 많다. ‘열린 광장(방명록)’에 올라온 이영석 총각네 야채 가게 사장의 글이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나는 절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야채 장사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고, 지금 또한 그런 생각으로 ‘총각네 야채 가게’를 만들어 왔습니다. 요즘은 대표님의 글을 읽으며 하루하루 또 다른 열정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2006년 7월 15일)

남중수 ‘고객 만나는 기쁨’

남중수 KT 사장은 주로 출근 직후인 새벽 5시 무렵에 홈피에 접속한다. ‘고객과 함께’ 코너에 직원·고객들과 찍었던 사진을 올릴 때가 가장 즐겁다고. ‘행복 메모(방명록)’에 올라온 글도 읽어보고 꼬박꼬박 답변을 한다. 새벽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은 그에겐 홈피 운영도 ‘공부’이기 때문이다.

남 사장은 “우리 회사 고객뿐만 아니라 잠재 고객들과 의사소통하면서 회사 경영을 배워나가는 데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 홈피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출문여견대빈(出門如見大賓·문밖을 나서면 만나는 모든 분이 큰 손님이라는 뜻)’이라는 말을 마음에 두고 홈피 방문자들을 대한다.

보람도 많다. KT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한 대학생이 회사의 위험 요소에 대해 지적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객들로부터 회사나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홈피를 운영하면서 얻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홈피가 없었다면 잠재 고객과 만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홈피 운영은 고객에 대한 태도를 가다듬게 한다”는 게 남 사장의 ‘홈피 예찬론’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추억이 머무는 곳’. 개인적인 잡동사니들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 사장의 홈피가 기업 홍보나 CEO로서의 PR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현오 ‘매일 30분씩 싸이질’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싸이질’을 즐긴다. 싸이월드에서 자신의 미니홈피를 중심으로 두루두루 미니홈피를 둘러보는 것을 ‘싸이질’이라 한다. 유 사장은 “미니홈피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면서 젊은이들의 고민도 이해해볼 수 있다. 이들을 통해 미래 인터넷 사업을 내다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때로는 일일이 대면하는 것보다 미니홈피 커뮤니케이션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 30분씩 미니홈피에서 노는 시간이 짧기만 하다. 즐겁고 열정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미니홈피가 한 몫 한다는 것. 이 회사의 심예원 사원은 “생일이면 사장님은 디지털 아이템을 선물로 주시곤 한다”며 미니홈피 때문에 회사 다닐 맛이 난다고 얘기한다.

‘비밀 방명록’은 고객과 사원에게 인기 만점. CEO에게 솔직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고객들의 다양한 제안은 서비스 개선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유 사장은 “홈피를 통해 불편사항과 다양한 제안을 받고 있는데, 공식적인 연결 통로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주는 마지막 보루라는 심정으로 겸허히 경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회원이 많은 싸이월드인 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됐는데 사장님도 한번 써보라는 사용자, 신입사원 공채 때 지원자의 친구라며 방명록에 친구 자랑을 한껏 써냈던 이용자도 있었다.

CEO 홈피 체크 포인트

“피드백은 기본, 영문 버전까지”

■ 방문 목적에 부합하는 정보를 : CEO 홈피에 여가를 즐기기 위해 오거나 삶의 지혜를 배우러 오는 방문자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가장 많은 방문자는 투자자들이며 그 다음 방문자는 직원들일 것이다. 투자자들은 CEO의 역량을 보고 그 기업의 미래를 가늠한다. 투자자와 관련해 CEO 홈피에서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콘텐트는 성공적인 경력, 미래 지향적인 경영철학, 대내외 활동 등이 될 것이다.

■ 휴머니즘을 잊지 않는다 : 사람들은 상대에게 휴머니즘을 느낄 때 그 사람을 믿게 된다. 이런 장치로는 취미나 즐기는 음식 같은 Q&A, CEO 일기장, 일상 생활을 담은 CEO 앨범 등이 적합하다. 지나치게 가족, 사생활에 맞춰진 콘텐트보다는 직원과 관계된 행사나 일 등을 인간적으로 대처해나가는 모습 또한 직원 사기 진작에 좋은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 좋은 이미지는 좋은 비주얼에서 : 훌륭한 내용을 제공하면서 정작 CEO 사진은 내용과 부합하지 않은 짜깁기식으로 만든다면? 사진의 퀄리티가 낮다면? CEO 홈피의 핵심은 CEO다. 가능하다면 홈피 내용에 부합하는 전문 설정 사진을 제작하는 것이 좋다.

■ 커뮤니케이션은 필수 : CEO와 접촉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웹으로 제공되는 핫라인 서비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CEO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 느끼게 된다. 비서가 게시판 운영에 자신감이 없다면 단순한 질의응답 페이지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 키워드는 글로벌, 영문 버전은 필수 : ‘글로벌 홈피’는 성장과 확장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글로벌 전략을 표방하지 않는다 해도 영문 버전의 CEO 홈피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이 CEO가 나아가서는 이 기업이 성장과 확장의 기본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해 줄 것이다.

도움말 : 박정구 이모션 과장

임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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