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지음, 소나무, 336쪽, 1만8000원
니체는 역사를 기념비적, 골동품적, 그리고 비판적 방법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각각 찬미, 회고, 반성을 뜻한다. 지은이는 철두철미하게 세번째 방법을 취한다. 단 그가 초점을 맞춘 것은 역사 자체가 아니라 '사학의 역사'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서라기보다 역사학 서적인 셈이다.
지은이는 작심하고 국사 교과서의 근간을 흔든다. 학교에서 배운 국사 지식이 전부라면 적잖은 혼란과 충격을 각오해야 할 정도다.
초반부터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다. 단군이 어떻게 한민족의 시조가 될 수 있느냐고. 또 요즘 드라마에서 뜨는 주몽.연개소문.대조영의 피가 과연 한국인에게 얼마나 이어졌겠느냐고.
지은이는 한국사의 출발점을 고조선으로 '믿는' 주류 사학에 도전한다. 고구려의 적통성도 부정한다. 신라에 의해 정복돼 망한 뒤로 역사의 뒤로 사라졌으며, 그 정체성도 신라로 흡수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발해는 말갈의 역사라고 단언한다.
대신 한국사는 신라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김.이.박 등 한국인의 절반이 넘는 성씨들이 신라인을 시조로 한다는 게 근거다. 신앙처럼 굳어진 단군 시조론이나, 가슴 벅차오르는 고구려의 서사시는 '대본'이요, '발명품'이라고 공격한다. 이는 이데올로기에 가까운 민족사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민족이라는 화장을 지우고 국가를 중심으로 한 한국사를 재정립하자고 촉구한다. 이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민족이라는 명분에 밀려 흐물흐물해진 우리의 국가의식과 정치의식을 바로잡는 길로도 통한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독자적인 시각으로 주류 사학계와 자주 논쟁을 벌여왔다.
남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