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중국 정부에 굴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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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국이 자체적으로 선출한 교구 주교를 교황이 승인했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일방적인 주교 임명으로 양측의 관계가 악화된 이후 2개월 만이다. 중국 천주교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양측 관계가 개선돼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는 1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사진)가 중국이 독자 선출한 광저우(廣州) 교구 주교의 서품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로마 교황청은 2001년 5월 사망한 린빙량(林秉良) 주교 후임으로 중국의 신학자인 간쥔추(甘俊丘) 신부가 서임될 예정이라며 최근 교황의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19일(현지시간)로 예정된 교황청의 중국정책 논의를 위한 특별회의 개막 하루 전에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회의에는 교황청 국무장관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이 주재하며 조셉 천(陳日君) 홍콩 추기경도 참석해 교황청의 새해 중국정책을 논의한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광저우 교구는 간 신부를 주교 후보로 선출한 뒤 교황청과 중국 천주교 주교단에 인준을 신청했었다.

교황청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그동안 서너 명의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거쳐 간 신부를 주교로 임명키로 했다. 그러나 이번 주교 승인이 곧 열리는 중국정책 특별회의나 향후 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교황청의 간 신부 서임 발표 직후 곧바로 '우호적인 조치'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류바이녠(劉柏年) 천주교 애국회 부주석도 "교황의 결정을 환영한다. 이번 결정은 교황이 자신의 신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안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국과 바티칸 관계를 개선하는 좋은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바티칸회의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책이 마련됐으면 한다는 희망도 피력했다.

간 신부가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할 경우 지난해 5월 랴오닝(遼寧)성 페이쥔민(裴軍民) 주교 임명 이래 교황청이 승인한 첫 주교가 된다. 중국과 바티칸 관계정상화 논의는 지난해 11월 중국정부가 바티칸 당국의 승인 없이 쉬저우(徐州) 보좌 주교에 왕런레이(王仁雷) 신부를 일방적으로 임명하면서 중단됐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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