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도문|이숙영<KBS 아나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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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중매체인 방송에서 일하다보면 방송된 내용 중에 유독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오는 것들이 있다.
얼마 전 진행을 맡고 있는 아침방송 시 코너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모 여대동창회지에 실렸던 저자미상의 기도문을 낭송한 적이 있었다.
그 기도문을 인용한 사람도 그 글의 주인공을 몰랐던지 그저 내용만 써놓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저자미상의 기도문이 방송으로 나간 날 아침 전화문의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지은이가 누군 줄 알 수 있느냐, 어떤 책에 실려있는지 알려줄 수 없느냐는 등 청취자들로부터 빠른 반응들이 날아와 전화로 일일이 그 내용을 불러주느라 부산했지만 마음만은 흐뭇했다.
아, 사람의 감각 내지 심미안은 비슷비슷한 거로구나, 혹은 좋은 내용일 경우 공감대를 형성해오는 청취자들이 많을 수 있다는 확신 비슷한 느낌 때문에….
이렇게 많은 전화를 받았던 그 기도문의 내용을 이 지면에서 꼭 한번 소개하고싶다.
「주님이시여, 당신은 제가 늙어가고 있고 그리고 결국 어느 날 노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제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수다스러워지는 일에서 멀리하게 하시고, 특히 기회 있을 때마다 꼭 한마디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습관을 버리게 하소서. 남의 일에 사사건건 뛰어들어 이를 바로잡아 보려고 덤비는 일이 없게 하소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설명을 길게 늘어놓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이 없이 빨리 결론에 도달하게 하시고, 너그러움을 허락케 하시고, 인내로써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괴로움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입을 봉하게 하시고, 성인이 되기보다는 사려 깊게, 그러나 침울하지 않게 하시고 남을 돕는 일에 내 주장만을 내세우지 않게 하시고…. 그러나 주님이시여, 당신은 제가 끝까지 남을 몇몇 친구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 글이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흔히 전형적인 기도문에서 연상되는 고답적이고 딱딱한 내용이 아니라 정말 피부에 와 닿는 진솔한 문구로 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새 기도문처럼 새 방송이란 말하는 사람조차 실행 못할 진부한 훈계조나 위선적인 내용이 아니라 권위와 형식주의에서 탈피한 자유로움과 함께 실험도 불사하는 앞서가는 감각, 그리고 2000년대를 조망하는 비전까지 제시해야 하리라고 본다.
방송을 계속 하는 한은 껍데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재미와 위안을 동시에 줄 수 있는 그런 방송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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