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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서류', 오후엔 '간식'…직장인 잔심부름 백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잔심부름 대행업체 ''S''의 한 직원이 배달전용 오토바이를 타고 심부름 갈 채비를 하고 있다.

'동대문에서 산 옷인데 다른 디자인으로 바꿔 배달해주세요.'

지난 8일 오후 2시쯤 '잔심부름' 대행업체 배달원인 박성재(23)씨는 '출동!' 문자를 받았다. 역삼동 인근의 한 회사에 근무중인 박선주(24.직장인)씨는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교환하려는데 점심시간을 이용해 동대문까지 오가기는 빡빡하다"며 심부름을 의뢰했다. 소요시간은 50분 남짓. 1만 원의 심부름값을 받았다.

하루종일 일에 치여 사는 '워커홀릭' 또는 편리의 극한을 추구하는 '귀차니스트'를 위해 개인적인 잔심부름을 하는 틈새 업종이 활기를 띠고 있다. 용역업으로 등록된 잔심부름 업체는 지난해부터 생기기 시작, 전국적으로 10여 개가 성업중이다. 대행업체 'S'의 경우 직장인이 주고객인 강남점의 월 매출액은 3천만원. 30개 가맹점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효자' 구역이다. 강남점에서 하루 동안 직장인이 의뢰하는 잔심부름 평균 건수는 150여 건. 학생밀집지역인 신촌점 (70여 건)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오전엔 '서류', 오후엔 '간식' 배달=강남점의 '심부름꾼' 30여 명은 직장인의 개인비서 역할을 지근 거리에서 담당하고 있다. 기본적인 잔심부름은 990원에 이용할 수 있고 거리에 따라 10분당 1000~2000원이 더 붙는다. 직장인의 심부름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잃어버린 지갑 찾아주기', '집들이 청소하기', '여성의 늦은 귀갓길 도와주기' 등이다. 황당한 주문이긴 하지만 '목욕탕 때 밀어주기', '동영상 파일 대신 찾아주기' 등도 한 달에 한 두건 정도 접수된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직장인이다 보니 잔심부름 종류는 시간대별로 분류된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오전 9시에서 낮12시까지는 서둘러 나온 직장인들이 집에 두고 온 서류를 가져다 달라는 주문 전화가 주를 이룬다. 점심시간인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는 'A집 음식이 먹고 싶은데 배달이 안된대요', 출출할 때쯤인 4시에서 5시까지는 '분식집에서 간식 좀 사다주세요'로 압축된다. 저녁시간이 다가오는 5시에서 6시 사이에는 '회식 자리를 예약해주세요', 오후 6시 이후에는 '밖이 추워요, 군고구마 좀 사다주세요' 등 외출을 꺼리는 직장인의 주문이 이어진다.

◇직장으로 출장 안마=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즉각 찾아오는 서비스도 직장인에게는 매력적이다. '콜' 한번이면 특수 의자를 사무실로 가져와 마사지를 해주는 '안마사 서비스'도 있다. 국.찌개.반찬 등 데우기만 하면 '식사'가 되는 아침밥 배달 서비스는 요리사 노릇을 한다. 아예 장을 봐주는 파출부도 있다. 전화로 주문을 하면 15분 이내에 1000원의 추가료와 함께 물건을 배달해주는 편의점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에서도 바쁜 현대인을 중심으로 '여행용 짐 꾸리기', '청구서 대신 지불하기' 등 심부름꾼 서비스가 확대되는 추세다.

◇'워커홀릭'&'귀차니스트'=직장인들이 유독 '심부름꾼'을 많이 찾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내 시간을 쪼개 '무엇'을 할 바에 차라리 그에 대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현대인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창업코리아 강병오 대표는 "전반적인 소득 수준 증대, 삶의 질 향상 추구, 개인주의 팽배 등으로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주는 서비스를 원한다"며 "그런 서비스에 대해서는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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