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냉전굴레 벗었다”(남북공존 유엔시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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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양측 통일방안 접점 가까워져/북 개방·교차승인에도 돌파구/통일논의·경협등에/남도 자세전환 할때
□전문가 대담
이호재 교수(고려대·평화문제연구소장)
김덕 교수(외국어대·정치외교학)
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수락발표로 남북 분단사는 새로운 장으로 들어가게 됐다. 북한의 정책전환은 교착상태에 놓여있던 남북관계에 숨통을 트게 해주고 나아가 한반도와 주변정세의 변화마저도 기대하게 해준다. 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선언이라는 획기적 정책전환의 의미,배경,남북관계의 전망,한반도 주변국가와의 관계 등을 전문가들의 연쇄 긴급진단으로 알아본다.
▲이호재 교수=통일로 가는 길을 둘러싸고 남북에는 두가지 주장이 있었습니다. 잠정적으로 두개의 한국을 인정하는 것이 통일에 필요하다는 남의 주장과 통일로 바로 나가자는 북의 주장이 대립되어 왔습니다.
이같은 입장차이는 유엔동시가입문제를 중심으로 첨예하게 대립돼 왔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동시가입을 수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동시가입수용은 북한의 기존노선 포기와 더불어 한반도 주변4강의 교차승인길도 트고 북의 고려연방제 통일안과 우리의 한민족공동체 통일안이 접점을 찾아내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유엔 동시가입이 두개의 한국과 4강간의 관계를 법률적으로 제도화시키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점진적 통일론」을 둘러싼 남북의 이견이 좁혀질 수 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나아가 북한과 미국·일본과의 접촉이 진전됨으로써 북의 개방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만이 일방적으로 가입할때 유엔문제가 오히려 남북과 우리 내부에서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북이 동시가입을 수용한 것은 남북의 불필요한 갈등을 미연에 해소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북한 지도집단이 현실감각을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김덕 교수=북한의 동시가입선언은 북한체제 안팎 모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북의 유엔가입은 동아시아 및 세계적으로 새로 형성되고 있는 신국제질서와 한반도의 질서가 필수적으로 수렴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국제질서의 변화라는 압력은 북한이 유엔동시가입 수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북한이 감당하기 힘든 국제화해의 압력을 고통스럽게 수용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이 자신의 외교적 신축성을 결정적으로 제약해 왔던 냉전적 굴레로부터 해방됐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북한 외교의 갈등 원천은 국가기구의 실리외교,당 중심의 이념외교가 충돌하면서 빚어져 왔습니다. 이같은 갈등으로부터의 탈출을 향한 첫걸음이 동시가입선언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요컨대 북한이 현실외교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장차 남북관계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할 북한 외교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교수=북한이 이같은 중대전환을 모색하게된 계기는 먼저 국제적인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생각입니다.
우선 중국·소련의 분위기변화를 들수 있을 것입니다.
소련은 두개의 한국,공존을 통한 평화적 문제해결의 입장을 취해왔고 최근에는 한국의 유엔가입문제와 관련,거부권행사를 안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것이 북에 압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중국입니다. 중국과 한국과의 접근강화가 북에 압력이 됐으리라는 점은 상식입니다만 중국이 최근 『한국의 유엔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할 입장이 아니다』고 북에 설득한 것이 결정적 압력이 됐을 것입니다.
고착상태 직전의 북­일국교교섭을 전진시키기 위한 돌파구 마련을 위해서도 유엔동시가입을 고려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으로서는 경제난타개를 위해 일본의 자금이 필요한 입장인데 두개의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한 여하한 관계진전이나 경제협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갈수록 강경하게 나오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카드로 유엔 동시가입수용이 유용하리라는 계산도 했을 것입니다.
▲김교수=북한이 이처럼 중대한 정책전환을 하게된 일반적 배경으로 대일·대미외교의 장애물을 돌파해야 한다는 긴급한 요청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현안이 되고 있는 핵사찰은 뒤에 제시할 카드로 남기고 가장 충격이 적은 카드로서 유엔가입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의 중­소회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교수=국제정세에의 적응을 위해 정책전환이 필요하다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이를 가능케한 북한체제 내부의 배경도 있었을 것입니다.
▲김교수=내부문제와 관련해서는 북이 체제정통성의 개념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 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체제의 정통성은 「남조선혁명」이라는 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혁명수행자체가 더욱 어려워졌고 따라서 체제정통성확보가 불안정해졌습니다. 게다가 경제난이 가중되는 상황이 겹치면서 경제의 성공이 체제정통성확보의 지름길이라는 점이 확실해졌고 지도부가 이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유엔동시가입 수용이 체제정통성확보를 위한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이교수=내부 정치적 배경으로 경제난 극복에 절실한 서방자본유치를 위해 유연해질 필요가 있고 이것이 유엔동시가입으로 나타났다는데 동의합니다.
또 하나는 소련과 동구사회의 변화이후 북한에도 서방세계와 남한에 관한 정보가 들어간 점을 꼽고 싶습니다.
폐쇄상태의 북한에 정보가 유입돼 경제개혁에 대한 요구가 가열되고 이를 일정한 대중세력과 정치세력이 뒷받침한 것이 정책선회를 가능케 했다고 봅니다. 과거의 고려연방제와는 달리 오늘날의 북의 고려연방제안은 사실상 두개의 한국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지도부로서는 이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내부모습이 있었습니다. 정통성에 금이 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모순은 유엔동시가입이 자연스럽게 해소시키고 통일방안을 현실화시킬뿐 아니라 나아가 체제보존까지도 가능케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김교수=북의 동시가입선언은 한편으로 북한의 정책결정자들 가운데는 합리적인 그룹인 「현실직시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사실 북의 지도집단을 비현실적이고 몰상식한 그룹으로 봐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김일성·김정일이하 지도그룹이 필요하다면 합리적 결정을 내린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교수=유엔 동시가입이 북의 대외관계,남북관계에도 파장은 미칠겁니다.
먼저 4강과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4강의 남북한 교차승인이 가능해진다면 우리의 점진적 통일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남북의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북한도 현안이 되고 있는 핵사찰문제에서 보다 유연해질 것입니다.
더욱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유엔이라는 무대에서 국제적인 게임의 룰에 적응하면 남북의 대화도 유연하게 될 것입니다.
▲김교수=북한 대내외정책의 변화가 가속화되리라는 자연스러운 기대가 가능할 것입니다.
종래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에 최대 장애물은 북한 정치체제의 교조성이었습니다만 이것이 동시가입 수용으로 자연스레 해소되는 만큼 남북관계 실질개선의 전망은 아주 밝습니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긴장으로 꽉차 있어 과잉군사화 되어 있는 남북관계가 비군사화의 방향으로 진전돼 군비통제나 신뢰구축에서의 실질적 전진이 기대됩니다.
고위급회담과 같은 정치적 성격의 회담이 더욱 잇따라 열릴 것입니다.
다만 유의할 점은 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선언에도 불구,북의 대남정책이 전면 전환된다고 볼 수 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정통성의 문제 때문에 남조선 혁명노선과 정상적 국가관계가 병행될 것입니다.
▲이교수=북한의 대남 외교측면에서 척도로 등장하는 핵심사안인 주한미군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종전과 같은 입장을 취해 계속 내정간섭을 할 것인가,아닌가는 북의 대남정책변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우리측이 군비축소와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북한의 유엔동시가입수용의 의미가 현실적으로 통일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내부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하다는 점입니다.
▲김교수=북한의 자세전환은 우리의 기존통일문제에 임하는 논리의 수정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힘겨워하는 경제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관대한 협조자가 될 수 있는 비전과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자세전환이 남북 모두가 통일문제를 향해 수렴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만큼 보다 신축성 있는 통일정책으로 전환해야할 시점이 온 것입니다.
따라서 북의 변화를 덮어놓고 좋아만할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우리 체제의 정통문제를 확고히 다지도록 전국민의 합의를 이끌만한 고도의 정치력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때입니다.<정리=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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