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부동산 두 토끼 사냥 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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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최근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한때 900선을 위협받으면서 수출 기업들은 급격한 원화 절상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로 비명을 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방어하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 지난해 수출액이 3000억 달러를 넘으면서 한은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2389억 달러로 1년 새 286억 달러나 늘어났다. 이중 200억 달러를 한국투자공사(KIC)에 맡겨 해외투자에 나설 계획이지만 아직 투자 경력이 일천해 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가 더 이상 인위적으로 환율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업.금융회사.개인 등 달러를 해외로 들고나갈 수 있는 모든 경제주체를 활용하는 해외투자 촉진책을 내놓았다. 민간이 달러를 들고 해외에 나가도록 함으로써 외환 수급을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 대책으로 기대하는 해외투자 효과는 연간 100억~150억 달러로 외환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다.

정부는 특히 개인의 해외투자 확대가 가장 효율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라고 보고 해외주식 펀드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제시했다. 정부는 현재 해외펀드 규모가 300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가 높기 때문에 비과세 혜택까지 주어지면 해외펀드로 빠져나가는 돈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증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해외 주식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달러화의 해외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이다.

기업의 해외투자를 지원하는 범위도 확대된다. 지금까지 개발.생산 사업에만 지원되던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이 탐사사업까지 확대된다. 유전 개발 등 리스크가 따르는 사업에는 정부가 돈을 대서라도 해외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해외투자에 따른 투자이익의 본국 송금이 늘어나면서 소득수지 흑자가 전체 경상수지 흑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방안을 내놓는 배경이 됐다.

이 과정에서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효과까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이번 대책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해외투자 장려는 국내 부동산시장에 쏠려 있는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투자 목적으로 해외 부동산을 300만 달러까지 살 수 있도록 한 조치는 해외 부동산 투자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3월 주거 목적의 취득 한도가 폐지된 데 이어 5월 100만 달러까지 투자 목적 취득이 허용된 이후 이미 해외 부동산 투자가 급증했다. 2005년까지 29건에 불과했던 해외 부동산 보유 건수는 지난해 1268건으로 늘어났으며 이 중 100만 달러를 넘는 주택 구입도 41건에 달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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