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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중국주림 신이 그린 천하제일 동양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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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 폭의 동양화에 둘러싸여 여덟 시간의 뱃길을 간다고 상상하여 보라. 아무리 삭막한 현대인일지라도 어찌 시심이 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부터 중국인들은「구이린」의 산수가 천하제일이라 극찬하였으며 많은 묵객시인들이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노래한 곳이다.
『강은 꿈같이 푸른 띠를 만들고 산은 벽옥의 비녀 같구나』라고 당나라의 시인 한유가 읊었던 곳이 바로 이 계림이다.
강과 무수한 봉우리가 형형색색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곳, 조화옹의 그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곳, 이곳이 바로 중국 제일의 관광지 계림이다.

<옛날에는 바다 밑>
회색 빛 도시의 탁한 공기에 지친 심신은 이「신이 그린 동양화」인 계림에서 말끔히 씻기고 만다. 안후이성의 황산, 장시성의 루산이 웅원한 산세를 지닌 배화라고 한다면 계림은 항저우의 서호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계수나무의 향기가 품기는 신비한 색조를 띤 남화라고나 할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계림의 그 독특한 지형은 꿈을 꾸듯 몽롱하여 마치 여신의 젖무덤 같다. 그 사이로 리강이 흐르고 있다. 계림은「카르스트」지형으로 그 옛날 해저에 잠겨있던 지각의 변동으로 융기하게 되어, 현재처럼 세계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경치를 나타내는 기암괴석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계림은 인구 40만명인 광시 장족자치구의 중요도시다. 시내를 흐르는 리강이 교통의 혈맥을 이룬다(중국 서남부의 큰 강을 가리켜 모두 강이라 하고 중국북부의 강처럼 작은 강은 강이 아니라 천이라 하는데 이 리강은 양자강의 한 지류를 이룬다).
이 리강은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구이장 쉰장 주장을 형성하여 중국의 남방 관문인 광저우에 이른다. 북으로는 링쥐의 수로를 거쳐 샹강에 이르러 동정호를 통해 양자강으로 연결된다. 계림은 이러한 교통의 요지여서 예부터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후한 말에는 촉나라의 유비와 오 나라의 손권의 쟁탈목표가 되었으며 제갈량이 한때 이 지역의 행정을 관장한 적이 있으나 결국 손권의 지배에 들어간『삼국지』의 무대이기도 하다.
계림에 도착하면 먼저 지도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시가지도인「계도유도」에는 계림시가도와 리강풍경도가 컬러 일러스트 맵으로 실려있어 알기 쉽게 되어있고 도움이 되는 여행정보도 많다.
계림시가지 자체는 비교적 작으므로 중국의 대표적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빌려 타고 시내를 돌아보는 것이 좋다(리강호텔 근처에「렌터사이클」이 있음).
시내에 우뚝 솟아있는 독수봉은 평지에 우뚝 솟은 석회암으로 된 봉우리인데 높이가 약1백52m. 직각에 가까운 절벽을 깎아만든 계단으로 쇠난간을 잡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돌계단을 헛디디면 몸은 곧장 평지에 떨어지게 되어있다. 3백6단의 계단을 오르면 정상인 눈앞에 펼쳐지는 이 파노라마를 만끽하고 동쪽의 비탈로 내려가면 육조의 시인 안연지가 시를 지었다는 암가와 절벽에 새겨진 명나라 때의 한문 등을 볼 수 있다.
이 독수봉은 옛날의 왕성인 정강부(지금은 광서 사범대학으로 사용)의 북쪽에 위치해있다. 그러니까 사범대학의 경내에 있는 것이다. 14세기 명나라 때 황제의 동생이 이 산밑에 별궁을 건축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궁정문만 남아있을 뿐이다.
계림시 주변은 이러한 기봉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동굴도 많고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이들 석벽에는 무명·유명인들이 시와 감상문을 새긴 것이 2천 곳이나 된다고 한다.
자전거로 복파산·루채산, 그리고 코끼리가 리강의 물을 마시려 하는 형상인 상비산등의산봉우리와 칠성암·노적동등의 동굴도 두루 가 볼만한 곳이다.
계림시 중심가 중산로에는 호텔·우체국·제과점·서점·토산품점·극장 등 도시에서 필요한 것은 거의 다 있다. 토산품을 사고 싶거나 레스토랑이나 여관을 찾는 등 대개의 볼일은 이 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해방로는 서민거리다. 떠들며 쇼핑하는 아주머니, 인도에 좌판을 내놓고 완탕을 먹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거리다.

<호숫가 벤치에서>
리강을 가로지르는 해방교 앞에서 해방로를 가로지르는 빈강로 북쪽으로 가면 푸포산, 디에차이산 이라고 하는 기봉이 나타난다. 또 중산로 남폭으로 가면 삼호와 용호란 호수가 나타난다. 이 호수 북쪽의 용호북로와 삼호로는 청춘남녀들의 데이트코스로 벤치나 호수 가운데의 섬에서 열심히 사랑을 나누는 커플을 쉽게 볼 수 있다.
토산품을 사려는 사람은 양교 중턱의 갤러리를 구경하는 게 좋다. 산수화·벽걸이 등을 파는데 가격은 부르는 값의 3분의1에서 흥정하면 된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는 묘기를 부리는 새를 구경시켜주는 노인들이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소매치기를 직접 목격하기도 한다.
이제 중국관광의 하이라이트 리강여행을 떠나보자. 리강여행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여행이다. 구절양장 같은 리강의 양변에 솟아있는 수많은 기이한 봉우리들이 꿈속처럼 펼쳐져 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배로 강을 오가는 사공의 풍경은 자연속의 인간이 어떻게 평온함을 누릴 수 있는가를 그림처럼 보여준다. 서양인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우리 동양인은 자연을 동화와 귀일의 대상으로 삼았었다.
물같이 부드러운 물질이 이 세상에 또 존재하는가. 거기에다 산봉우리도 위압적인 직선이 아닌 수많은 곡선의 부드러움으로 조화되어 있으니 어찌「물처럼 유연하게 사는 것이 최상」이라는 선인의 말이 틀릴 수 있겠는가.
흩어지는 계수나무 낙엽속에서 강가의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어디선가 소동파의시『적벽부』에 나오는 뱃사공이 들었던 그 소소하고 애절한 피리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선인이 된 느낌도>
계림에서 양삭까지 약84km의 남송화를 여덟 시간 가량 감상하는 사이 인간과 자연은 하나로 조화된다. 그 속에 묻히다보면 문득 동양화속의 선인이 된 느낌이 든다.
미술을 하는 사람은 물론사진촬영 취미를 가진 사람이 필히 와봐야 할 곳이 이곳 계림이 아닐까.
배에서는 중국어로 바위에 얽힌 각각의 전설을 안내해 주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아쉽다. 상핑이란 곳을 지나면 점심이 시작된다. 계절에 맞는 요리에 마오타이주라도 곁들이며 주위의 손님과 여행담을 나누는 등 식사를 즐기다보면 배는 어느덧 양삭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한 시간정도 자유시간을 가진다.
양삭는 계림에서도 그 경관이 으뜸을 이루는 곳이다. 초생달같이 뚫려있는 월량산, 둥근 구멍이 뚫려있는 착암산을 비롯해 벽련봉·설사령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때로는 다정한 오누이 같기도 하고 때로는 정겨운 연인들 같기도 한 봉우리들이 이렇게 모여 앉아 서로 다정한 얘기를 나누는 듯하다. 이 봉우리들은 맑은 강가에 솟아 있어 그 그림자가 명경지수같이 맑은 강물에 거꾸로 비친다.
선착장 바로 위에 있는 벽련봉 정자에서의 조망은 특히 아름답다. 여름에는 강변 어디에서나 수영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석양의 계림을 보고싶으면 아침에 계림을 떠나 장거리 버스로 양삭까지 가면 된다.그리고 점심때가 지나서 계림행 배를 타면 리강 양변의 봉우리사이로 비껴지는 석양의 계림을 접할수 있는 색다른 리강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정인화<고려대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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