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민당 존립 기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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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의 대표적 '평화헌법 수호자' 도이(土井) 다카코(74) 사민당 당수가 13일 총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수직을 전격 사임했다. 당의 간판스타가 물러남에 따라 사민당은 심각한 존립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도이 당수는 이날 "중의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사민당은 지난 9일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헌법개정 반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전체 의석 4백80석 가운데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선거 전 의석의 3분의 1이다.

도이의 패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 이후 불어닥친 반북 여론으로 과거 북한과 밀접했던 사민당이 불똥을 맞은 점▶사민당 유력 의원의 비서 급료 사기 사건에 도이 당수의 전 비서가 관여된 점▶국민 성향이 보수화돼 개헌반대 주장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점 등이 꼽힌다.

도이 스스로도 처음으로 지역구에서 낙선하고, 비례대표로 구제돼 간신히 의원직(12선)을 유지하게 돼 체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래도 사민당 집행부는 다음달 전당대회까지는 도이 체제를 유지하려 했지만 당내 반발이 워낙 거세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도이 당수는 일본 정계.진보 세력의 변동기 때 중심에 서있던 거물 정치인이다.

헌법학 박사인 그는 1969년 사민당의 전신인 사회당 후보로 중의원이 됐다. 최초의 여성 사회당 당수(86년), 헌정 사상 첫 여성 중의원 의장(93~96년)이란 기록을 세우면서 여성의 정치력 향상에도 큰 기여를 했다.

89년 참의원 선거 때는 여성 후보를 전면에 내세우는 '마돈나 전략'이 붐을 일으켜 자민당보다 많은 46명(여성 22명)을 당선시켰다. 96년 이후 당명이 바뀐 사민당 당수로 활약했지만, 몰락하는 사민당과 함께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것이다.

'평화헌법과 결혼했다'고 했을 정도로 평화 수호에 앞장섰던 그의 퇴장으로 일본의 재무장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나아가 거대 야당이 된 민주당은 사민당에 '통합의 손길'을 보내고, 사민당을 지원해온 많은 노조들도 집권 가능성이 큰 민주당으로 발길을 돌려 도이 없는 사민당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사민당의 국민 지지율은 1%대에 불과하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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