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대소 수출 창구조정/길진현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소 경협차관에 따른 소비재수출 창구지정이 끝내 말썽이다.
지난 20일부터 상공부에서 열렸던 한소양국 실무협의에서 소형 전동기와 전화선 등 2개 품목 3천6백70만달러어치에 대해 국내업계의 과당경쟁으로 창구지정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들 품목의 창구지정이 보류된 직접적인 원인은 당초 업계의 「자율조정」에 따라 삼성물산·럭키금성상사가 수출창구를 맡기로 했던 것을 무시하고 소련측이 대우를 지정해주도록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대우의 소련측에 대한 막후로비가 주효했다.
이에 따라 대우에 업계의 따가운 눈총이 돌려지고 있다.
그러나 대우측은 이들 품목이 수년전부터 소련에 수출해왔던 것으로 창구지정 과정에서 대우가 제외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대우는 이미 관련협회·상공부에 이의신청을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창구지정 보류사태와 같은 부작용이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다.
이들 품목뿐만이 아니다.
소련측이 제시한 34개 전품목에서 비슷한 과당경쟁이 빚어졌다. 일부업체는 창구지정을 받기 위해 심한 경우 30%까지의 덤핑가격을 소련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련측은 자신들이 바가지를 쓰는 것으로 의심해 시장가격을 확인하고 돌아다녔고 창구지정된 업체가 제시하는 가격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업계도 심사가 뒤틀려 있다.
업계는 자율조정과정에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칙이 없는 조정방식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대소 소비재 수출을 위한 업계의 경쟁이 막바지에 이른 후 뒤늦게 자율조정에 맡겨져 혼선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국제화시대를 맞아 국내 기업들은 국내외 시장에서 외국기업,또는 다른 국내기업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다국적기업이 늘어나면서 국내기업·외국기업의 구분도 모호해졌다.
그럴수록 해외시장에서의 국내기업간 협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대소 소비재 수출창구 지정과정에서 나타난 과당경쟁이 앞으로는 벌어지지 않도록 업계의 경쟁적 협력관계 정립이 시급한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