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옛 절집이 그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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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빌리면 '요즘 절집은 그림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절집의 불사(佛事)가 너무 잦아서,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전각이 능청스럽게 들어앉아 있는가 하면, 눈에 익은 전각들이 장기판의 말처럼 여기저기 옮겨앉거나 해서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기왓골에 이끼가 끼고 돌계단에 낙엽이 어지러운 고색창연함에서 '절맛'을 찾는다. 옛 모습 그대로 있지 않거나 어쩌다 낯선 집채라도 들어서 있으면 사람들은 '절을 다 망쳐놓았다'고 혀를 찬다.

하지만 절집은 스님들의 수도처요, 생활공간이다. 문짝이 망가지면 새로 고쳐 달아야 하고, 불편한 구석이 있으면 편리하게 고쳐 살아야 하고, 집이 망가지면 헐고 새로 지어야 한다.

문제는 불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불사가 고유한 자연환경과 전통적 문화환경에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절집이 날로 낯설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형 불사'다. 혹자는 '과거에 비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절집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대형 불사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우리 땅은 얼마나 넓어졌는가. 1인당 국토비율을 감안하면 오히려 국토는 엄청 줄어들었다.

터가 좁으면 작은 집을 짓고, 방이 작으면 작은 가구를 들여놓아야 어울린다. 불사는 욕심 부려서 하는 일이 아니다. 무욕으로 불사하고, 무위(無爲)로 건사해야 절이다. 절은 저절로 되어야 한다. 방 앞의 댓돌 하나도 함부로 놓지 않았던 옛 스님들의 성찰적 지혜가 그립다.

절집을 탐방했을 때, 그림이 되지 않는 것 가운데 성보박물관과 산중찻집.수세식 화장실 등이 있다.

한동안 성보박물관 불사가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그러나, 몇곳의 대형 사찰을 제외하고는 절반 이상이 컬렉션 미비로 철문이 닫혀진 상태다. 전라도 어느 성보박물관은 부끄럽게도 관광지에서 구입해온 남방불교 기념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런 졸속 행정은 근래 불교가 성급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산중찻집들은 이름만 전통찻집일 뿐, 도심의 카페처럼 통유리를 끼운 것부터가 국적불명이다. 서울 인사동에도 그런 잡탕문화는 없다. 게다가 경내 곳곳에 커피와 음료 자판기를 놓아두고 있다. 관광객에 대한 배려라고는 하지만, 절 밖에다 두어도 좋을 것을 굳이 경내에 두어 절집의 세속화를 스스로 재촉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런가 하면 올림픽 이후 친환경적인 전통 해우소를 허물고 반환경적인 수세식 양변기를 다투어 들여놓고 있다. 외국인과 관광객의 편의만을 위해 전통문화를 푸대접해서 몰아낸다는 것은 스스로 전통을 말살하는 행위다.

오늘날 우리들의 전통문화 대접은 영 말이 아니다. 한국불교의 당면 문제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켜 수행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설령 불편함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사찰 탐방객들이 1천6백년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김재일 두레생태기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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