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역갈등으로 비화한 하이닉스 증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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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이닉스반도체의 수도권 공장 증설 문제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당초 하이닉스는 13조5000억원을 들여 경기도 이천공장을 증설하고, 6000명을 새로 고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끝내 정부가 수도권 공장을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자 수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하이닉스는 이천과 청주로 분산 투자하거나 증설계획 자체를 줄이는 방안 등 대안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정부의 의도대로 되는 건지 모르겠으나 하이닉스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번 문제가 이천과 청주 지역 간 감정 싸움으로 비화하는 모양이다. 이천 주민 1만여 명이 지난주 증설을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연 데 이어 청주도 15일 범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한다. 국회의원들도 지역별로 나뉘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장 증설은 규모.시기.장소 등의 효율성을 따져 기업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여기에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이 정부의 코드가 끼어들면서 정치.지역 이슈로 변질된 것이다. 국민을 끝없이 갈라놓고, 싸움 붙이는 게 진정 이 정부가 원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눈치만 보면서 가슴이 타들어가는 곳은 하이닉스다. 반도체는 제때 투자를 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산업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몇 개월째 결정을 미루고 미적거린 것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가을 "(증설을) 허용해줬다가 회사가 투자를 안 하면 정부가 무책임한 것이 된다"는 정말 무책임한 궤변을 늘어놓더니 그 뒤 경제논리와 코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시간만 축냈다.

1분 1초가 아쉬운 기업이나, 괜찮은 일자리를 찾아헤매는 구직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다. 무책임 행정의 최대 피해자는 하이닉스이고, 나아가 국민인 셈이다. 우리가 이념과 코드의 늪에 빠져있는 동안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회사는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타도 한국'을 외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일로 하이닉스가 곤경에 처하고, 우리 경제에 주름살이 생긴다면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