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이물질 주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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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어느 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 외래진찰실을 찾아왔다.
수심에 찬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들어서는 부인의 얼굴은 곱살한 편이었다.
그녀의 사연인즉 20년 전에 코를 조금만 높이면 더 예쁘겠다는 말에 솔깃해 철없이 주사를 맞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뺨 쪽에도 조금 맞았다 한다.
그런데 아주 추운 날에는 그 부위가 시퍼렇게 색이 변하기도 하고 더운 날에는 벌겋게 된다며 그것을 제거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녀가 맞았다는 주사액은 파라핀 종류인 것으로 생각됐다. 이럴 때마다 환자들의 딱한 사정이나 무지함에 동정도가고 화도 난다. 그렇게도 많은 홍보를 하건만 아직도 파라핀 등의 이물질 주입에 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무슨 이물질이든 일단 몸 속에 주사액으로 주입되면 그것은 제거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선 그 말부터 하니 환자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몸 속에 주사액으로 주입하면 마치 마른 모래에 물을 부은 것처럼 주위조직에 스며들어 버린다. 다시는 그 물을 빼내고 마른 모래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일단 주사한 이물질은 절대 빼낼 수 없는 것이다. 젖은 모래에서 물을 빼는 것 보다 몸 속의 이물질 주사액 제거가 더욱 힘들다. 그것은 주사액에 대한 몸의 반응 때문이다.
이 반응은 주사한 재료에 따라 크게 다르다.
가장 심한 조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물론 파라핀이고 가장 적은 조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실리콘 주사액이다. 실리콘 주사액도 반응이 적다는 것이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미미하다는 실리콘 주사액도 실제로 주사한 조직을 보면 그 반응이 아주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파라핀을 주사한 경우는 그 조직반응이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부작용이 생긴 부위를 수술할 때는 마치 돌을 자르는 기분이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게된다.
이런 조직 반응이 일단생기면 그 조직은 비단 수술할 때 출혈이 심하고 지혈이 힘들다는 애로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술부위의 상처 치유가 늦다는 가장 큰 불리함을 안게돼 깨끗이 낫지 않는다.
조직으로 스며든 이물질은 물론 제거할 수 없고 만져서 딱딱하게 뭉친 부분도 다 이물질이 아니고 이물질과 조직이 합쳐진 덩어리이므로 제거가 힘들다. 또 그 부위 조직뿐 아니라 피부자체도 이물질로 변해 있으므로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 부분 피부가 죽어버리는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하다. 따라서 예전에 이물질을 주사했더라도 현재 큰 탈이 없으면 그대로 조심하면서 지내는 것이 오히려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이물질이 주사된 부분의 피부가 추운 날이나 더운 날에 색깔의 변화가 있을 수 있으나 이것은 이물질로 인한 피부 자체의 변화이므로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 이것저것 치료한다고 이미 손상된 피부에 더욱 손상을 가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 설명 끝에 환자는 돌아갔으나 환자를 돌려보내고도 개운한 느낌일 수 없다. 또 환자의 입장에서도 시원할 리 없다.
문제는 이렇듯 평생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눈가의 주름살을 편다며, 또는 홀쪽한 뺨을 통통히 하거나 관자놀이 부분을 도톰히 한다고, 코를 높인다고 계속 이물질을 주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뻐지려다가 평생을 울게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백세민><서울백병원 성형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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