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통과 예견된 수순/정순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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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공출범 이후 여야간에 3년여동안 줄다리기해온 개혁입법이 단 35초만에 날치기처리되고 말았다.
10일 오후 3시20분. 야당의원들의 필사적인 저지에 가로막혀 의장석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박준규 의장은 당의원들의 철통보호속에서 무선마이크를 통한 황망한 목소리로 보안법 개정안과 경찰법안의 가결을 선포했다.
결국 6공정부의 5공청산 공약중 최대 관심사였던 개혁입법처리가 여야합의 대신 날치기라는 변칙수단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이번 날치기통과는 9일 밤 여야 총무협상이 결렬됐을때부터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그 동안의 협상과정을 「방조」했다는 느낌도 없지않다.
이번 날치기 통과된 민자당의 수정안은 기대에는 못미치지만 정부·여당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최대의 차선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내면적으로는 이미 「실리」를 챙겼다는 판단에 따라 민자당으로 하여금 날치기통과라는 무리수를 두게해 민자당의 이미지에 생채기를 내고 이를 광역선거에 이용,그 반사이득을 보려는 정치적 계산이 도사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민자당도 이런 점을 의식해 「불가피한 대책」「민주개혁의 노력」 등이란 말로 그들 자신의 변칙처리를 변명하느라 급급하다.
그러나 민자당이 이왕 변칙적 수법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개혁적 노력」을 강행할 의사가 있었다면 그들은 안기부법 개정안도 처리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민자당은 이번 국회에서 개혁입법을 외치면서도 안기부법은 거의 언급하지 않다시피 했다. 안기부법 개정을 전제로 국회 정보위를 신설키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다룰때도 정보위는 뒤로 미뤄져 개정의 의사가 없다는 낌새를 보였다.
신민당도 이 문제를 놓고 늘어질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협상테이블에서 보다 진지하게 요구했어야 했다.
수사권을 축소하고 예산보고를 하도록 한 현재의 개정안은 그나마 개선된 것이며 국회 정보위 설치만으로도 안기부의 전횡을 막는 판막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거론조차 되지않은 채 다음 국회로 넘겨지고 말았다.
민자당이 진정한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며 신민당도 당략을 좇다가 소리에 만족하고 날치기의 「방조자」가 된 셈이다.
수적 우세를 앞세워 날치기라는 변태를 자행하는 민자당이나 이를 결과적으로 방조하고 만 신민당 모두 이점에서는 국민들에게 또 한번의 빚을 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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