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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의혹과 전관예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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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대법원장의 변호사 시절 사건 수임과 이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세간에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대법관을 지낸 변호사로서 수임사건은 적절했는지, 수임료는 얼마나 되며 거기에 따른 세무신고와 세금 납부는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에 대해 국민은 소상하게 알고 싶어 한다. 대법원장 스스로 이를 밝히겠다는 약속을 하는 한편, 수백 건에 달하는 수임계약서가 이미 모두 파기돼 없어진 상황 등은 우리의 판단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사법제도의 구조적 병폐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문제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일반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전관예우'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 둘은 각각 별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문제로 연결된다. 즉 고액의 비용을 지급하고서라도 대법관이나 검찰총장처럼 법원이나 검찰의 높은 직위 출신의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게 되면 원하는 방향으로의 판결을 보다 용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이미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현실적 인식과 요구에 부응해 전직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심지어 전직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까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줄줄이 개업 변호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돈이 최상위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비난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공연한 심술에 불과하며, 사법절차나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걱정은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면 검찰과 사법부의 기강과 공정성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거나 기우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나름대로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연(緣)으로 짜인 우리 사회의 구조 속에서 엊그제까지 한 식구였던 동료나 상급자를 외면하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검찰의 사건 처리 과정이나 법원의 판결에서 고위급 전관 변호사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 대다수가 쉽게 수긍하는 분위기다. 특히 영향력을 미치게 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고위급 전관 변호사가 수임했다는 사실만으로 사건 담당 검사나 판사의 판단이 심하게 영향을 받아 경우에 따라서는 왜곡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현실적 사례가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이 문제 해결의 핵심은 고위직 출신의 법관이나 검사가 변호사로서 개별 사건 수임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검찰이나 법원의 고위직을 지낸 분들이 스스로 개별 사건과 관련된 변호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들이 대체로 이런 범주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이런 길을 택한 존경받는 전직 대법관이 있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렵다면 하나의 대안으로서 검찰이나 법원의 일정한 고위직을 지낸 검사나 법관들의 변호사 개업은 법적으로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검찰이나 법원의 조직상의 문제점과 연계해 검사나 법관 개개인의 인적 독립과 정년이나 임기 등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풍토와 현실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한 대상의 범주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할 것인지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하고 분쟁이 많은 사회에서 사법절차와 법원의 판단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너무나 크다. 그래서 실망하게 될 때의 심정은 사건의 당사자가 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정의의 판단으로부터 소외된 국민을 두고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사법의 정상화를 통해 옳은 것이 관철된다고 국민이 느낄 때 실추된 사법의 권위가 회복되고 살 만한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김형성 성균관대 교수 ·법학

◆약력: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독일 괴팅겐대 법학박사, 한국 헌법학회 회장,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