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한국에 사표 내고 캐나다 간 기자의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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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느리게 가는 버스

성우제 지음, 강
232쪽, 1만원

"누가 가라고 등을 떠민 것은 아니지만" 성우제(44)씨는 나이 마흔에 물 설고 낯선 캐나다로 떠났다. 13년 봉직한,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내와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불안하게 새 땅에 뿌리를 내렸다.

대학 시절 부르던 '흔들리지, 흔들리잖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민 1세의 두려움을 삭이던 이 남자가 "지극히 주관적인" 수기를 썼다.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시사저널' 문화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친형인 소설가 성석제씨 못지않은 문청(文靑)인 그가 쓸 수밖에 없는 캐나다 통신이다. 이방인이 되어 바라본 한국과 캐나다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처지 덕에 그의 눈을 더 선명하게 해 주었다.

청각장애를 지닌 아이를 토론토 어린이 병원에 데리고 가 사랑과 감동 속에 수술을 받게 한 일, 개화기에 걸출한 풍속화가로 활동한 김준근의 그림을 온타리오 왕립박물관에서 발견한 사건, 마음 속 스승인 전신재.강성욱.김화영 교수를 기리는 추억 등 '느리게 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세상은 따뜻하고 따끔하다.

언론인 감각에 작가 정신을 접붙인 그의 버스에 올라타면 우리가 다시 보인다. "이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는 그는 말한다.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아무리 긁어내려 해도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마솥에 눌어붙은 누룽지이기 때문"에.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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