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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사설

자국민을 보호할 의사가 없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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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에 납치됐다가 31년 만에 목숨 걸고 탈출한 납북어부가 며칠 전 중국 선양(瀋陽)의 한국영사관에 구조요청 전화를 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영사관 직원들은 "내 업무가 아니다" "한국 정부에 전화하라"며 핑퐁식으로 전화를 돌리다 탈북자 담당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탈북자 담당자는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느냐고 추궁한 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끝이었다. 어느 나라 외교부 직원들인지, 개탄스럽고 분노만 치밀 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처음이 아니다. 1998년에는 탈북한 국군포로가 주중 한국대사관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가 여직원에게 거절당한 사실이 지난해 밝혀진 적이 있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외교통상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되풀이됐다. 파문이 커지자 외교부는 그제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일부 외교부 직원들의 국민경시 풍조를 엿본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외교의 중요 목표 중 하나는 자국민 보호다. 특히 해외공관은 외국에 있는 국민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그러나 해외공관 직원들이 불친절하다는 해외교포.관광객 등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사건도 이런 풍조가 곪아 터졌다고 본다. 납북자가 어렵게 탈출해 구원을 요청하는 데도 이를 내팽개친 것은 중대한 직무유기다. 외교부는 말로만 사과하지 말고 엄중 문책하고, 대책을 세워라.

노무현.김대중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북한에는 오랜 세월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납북자 등 한국인이 1000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들 가족의 눈물 가득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북한 눈치를 보느라 외면해 왔다. 이러니 해외공관에서도 이들을 냉대하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자국 국민을 위해선 어디든 직원들을 보낸다.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는 2002년 평양까지 찾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일본인 납치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지 않았는가. 남북 대화에서 납북자.국군포로의 귀환을 최우선 순위에 두라. 그것은 정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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