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다시 투혼을 불태우는 폭파전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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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5보 (69~91)]
白 조훈현 9단 : 黑 조치훈 9단

조치훈9단의 어록에 "목숨을 걸고 둔다"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 그는 진짜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바둑을 두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휠체어에 앉아 도전기를 두기도 했다.

조치훈의 기보집 제목은 그래서 '투혼 조치훈'이다. 하지만 일인자의 자리에서 밀려나 방황하는 동안 조치훈은 술도 배웠고 인생도 배웠다. 무려 9년 만에 다시 일인자의 자리에 복귀하며 그는 더 이상 투혼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생을 달관한 조치훈도 조훈현이란 사람을 만나면 온몸의 감각이 칼날같이 꼿꼿하게 일어선다. 그의 바둑인생에서 7연패를 당한 사람은 조훈현뿐이다. 이미 스코어를 뒤집을 수는 없게 됐다. 그러나 한번은 이겨야 할 것 아닌가.

조치훈은 절박감을 조용히 제어하며 69에 지킨다. 웅크린 수. 그러나 몇배의 도약을 위한 웅크림이다. 국면은 흑이 흐름을 타고 있다. 흑은 움직임에 여유가 있고 백은 급하다.

70, 72의 수비는 절대. 만약 손빼면 '참고도' 흑1, 3으로 발가벗겨지고 만다. 흑은 집을 내며 완생하고 백은 곤마가 된다. 77까지 선수로 안전을 확보한 흑은 멀리 좌상귀에 손을 돌린다.

이 부근이야말로 실리로는 반상 최대의 곳. 다만 흑은 A에 두어 백△를 공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도 있었는데 바로 삼삼에 들어간 것은 의외였다.

폭파전문가라는 별명을 지닌 조치훈은 수법이 격렬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삼삼침입은 의외로 담백해 사람이 변한 듯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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