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위반 봐주고 1만원 받은 경관…대법 "해임 사유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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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5년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근무하던 윤모(39) 경장은 그해 6월 6일 오전 해운대 근처 네거리에서 교통신호 위반 차량을 적발했다.

윤씨는 김모(23.여)씨의 차를 정지시킨 뒤 면허증을 확인했다. "출근하는 길인데 봐주세요"라고 사정하는 김씨에게 그는 "그냥은 안 되지요"라며 면허증을 돌려줬다. "담뱃값으로 만원짜리 한 장만 면허증 밑에 넣어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문도 곁들였다.

이에 김씨는 지갑에서 만원권 지폐를 꺼내 면허증과 함께 내밀었다. 윤씨는 "이렇게 주면 안 되고 돈을 몇 번 접어 보이지 않게 줘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윤씨는 꼬깃꼬깃 접혀 건네진 만원짜리 한 장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씨 승용차 동승자는 윤씨의 이름과 경찰 오토바이 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했다. 윤씨는 "신고해 봤자 나는 가볍게 처리되지만, 당신은 경찰서로 불려가 조사받고 범칙금까지 내야 한다"며 김씨와 동승자에게 으름장을 놓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승용차 동승자는 윤씨를 신고했고, 부산지방경찰청은 감찰 조사를 한 뒤 윤씨를 해임했다.

윤씨는 "14년 넘게 경찰에 복무하고 열 차례 이상 표창을 받았는데 단속 무마 대가로 1만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부산고법은 지난해 9월 윤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해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경찰공무원의 청렴 의무를 위반한 점 등을 감안하면 해임 처분은 타당성이 있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받은 돈이 1만원에 불과하더라도 경찰공무원의 금품수수 행위를 엄격히 징계하지 않을 경우 공평하고 엄정한 단속을 기대하기 어렵고 법 적용의 공평성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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