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원리에 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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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
산불이 인다
왕조를 쓰러트린 사내들이
봄볕에 숯처럼 그을리고
흰 옷 입은 충절이 홀로
긴 강물을 퍼 올리고 있다
풀은 자라서 노래가 되고
노래는 산처럼 깊어진다
아직 북천은 먹구름이다
살아서 죽고 죽어서 사는
무덤 하나가 일어서서
비구름을 쫓고 있다
2
대나무가 솟아났지요
산이라 한들 남음이 있겠습니까
고려가 보입니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듯
펄펄 끊는 넋이 보입니다
단심가에 모두 담으셨지요
역사의 거울도 닦아놓았구요
거기 착한 백성들의 얼굴
그렇지요, 뼈도 살도 모두 바쳐진
무너지지 않는 마음
그 환한 불빛을 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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