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쓿는다, 어찌씨 … 농업학자가 고른 우리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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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 1, 2

성제훈 지음, 뿌리와 이파리, 각 264쪽, 각 9800원

"벼를 쓿 때 생기는 부스러진 쌀알이 싸라기인데, 잘 쓿지 아니하여 빛이 깨끗하지 아니하고 겨가 많이 섞인 쌀은 궂은쌀이고, 이때 보이는 찹쌀 속에 섞인, 멥쌀같이 보이는 좋지 않은 쌀알이 물계입니다."

벼를 찧어 속꺼풀을 벗기고 깨끗하게 하는 걸 '쓿는다'고 한단다. '도정'은 일본어 찌꺼기란다. 농업학자인 지은이(지은이는 책에서 한자어인 '필자'보다 순우리말인 '글쓴이'나 '지은이'가 좋다고 했다)의 전공이 빛을 발한다. 그가 2003년부터 수천 명에게 아침마다 보낸 '우리말 편지'가 책으로 나왔다. 홀로 익힌 우리말 실력이 수준급이다.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좋은 시간 되세요'란 인사는 영어 번역투라고 꼬집고, '참.정말.꽤.무척' 등 '진짜'란 말 대신 쓸 수 있는 어찌씨(부사)가 많다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표준어 맞춤법 규정이나 사전의 문제점도 꼬집는다.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살사리꽃'을 '코스모스의 잘못'이라 적어놨단다. 지은이는 "그럼 해바라기는 왜 그냥 뒀죠?"라고 되묻는다. '윗사람을 그보다 더 윗사람에게 지칭하는 경우 존칭을 쓰지 않는다'는 존대법이 일본의 잔재라는 지적도 충격적이다. 우리 고유의 말법에서는 '님'자와 '~시다' 등 높임말을 다 넣어서 말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각종 맞춤법.띄어쓰기.사이시옷 등 우리말 법칙을 두루 쉽게 풀어낸다. 재미있게 우리말을 배우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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