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공짜 휴가 들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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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또 공짜 휴가 구설에 올랐다.

성탄절 휴가차 그의 가족이 탄 브리티시항공(BA) 여객기가 2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 이탈 사고를 일으키면서 호화판 공짜 휴가 사실이 드러났다.

블레어 총리 가족은 현재 일주일 일정으로 플로리다주에 있는 가수 로빈 깁의 저택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팝그룹 비지스의 멤버인 깁은 널리 알려진 노동당 지지자로, 지난해 영국 총선 때 노동당 지지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텔레그래프.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블레어 총리가 거의 제 돈을 들이지 않고 공짜 휴가를 즐기다 들통 난 것으로 보인다며 '대가성' 의혹을 지적했다. 깁이 영국 작곡가협회 회원으로 작곡자 권리 강화 법안을 유럽과 영국 정부에 로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언론들은 공짜 휴가가 총리와 영국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비난했다. 야당인 보수당 간부들도 "해마다 반복되는 공짜 해외 휴가를 그만두라"며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돈을 내고 준비한 휴가"라며 공짜 여행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총리가 휴가 비용으로 얼마를 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언론들은 마이애미에서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고급 별장을 일주일 빌리려면 4만 파운드(약 7200만원)를 내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언론들은 블레어 총리 가족이 해마다 여름과 겨울 휴가를 돈 많은 친구들이 소유한 해외 별장에서 지내는 '가문의 전통'이 있다고 꼬집었다. 2003, 2005, 2006년 휴가도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에 있는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별장에서 보냈다. 그런데 리처드가 영국 정부에 저작권 강화 법안에 관해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설에 휘말렸다.

2004년엔 지금은 스캔들로 물러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 별장에서 휴가를 보냈다. 지중해 사르데냐 섬에 있는 이 별장은 방이 73개나 된다. 당시 베를루스코니는 블레어 가족을 위해 콘서트를 열어주고 불꽃 놀이까지 벌였다. 1998년과 2000년, 2006년 휴가는 이탈리아의 유명 인사 기롤라모 스트로치가 소유한 투스카니의 별장에서 보냈다. 2002년 휴가지는 유럽의 억만장자 알랭 도미니크 패랭의 프랑스 별장이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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