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보 기간 개편 대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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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걸프전의 여파로 미국은 중앙정보국 (CIA)을 비롯해, 각 군 정보 기관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전승 무드 덕분에 미 정보기관들이 걸프 전쟁에서 저지른 실책들이 덮여있었으나 미 의회가 주도하여 청문회를 개최하고 정보 기관의 대폭적인 개편도 검토되고 있다.
사실 걸프전 와중에 부시 대통령의 참모회의에 웹스터 CIA국장이 계속 소외되어 부시 대통령이 정보 기관의 활동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들이 줄기차게 흘러나왔었다.
미 의회는 승리의 뒤끝이라 정보 기관의 기여도 대단했다는 찬사를 보내고는 있으나 청문회는 이라크의 침공을 사전에 간파하지 못한 것과 이라크의 전력을 과대 평가한데 대한 추궁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병력 평가에 있어서 CIA 등 정보 기관은 쿠웨이트 내에 적어도 50만명 이상의 이라크 병사들이 배치된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상전을 해본 결과 실제 병력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0만∼30만명에 불과한 것이 확인됐다.
또 정보 기관은 이라크의 화학전 능력에 대해 계속 강조했으나 이라크가 이를 한번도 사용치 않아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테러가 극심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전혀 빗나갔다.
지상 전전에 그렇게 강조했던 이라크군의 탄탄한 참호도 막상 가보니 허술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이같은 과대 평가 덕분에 미국이 지상군을 50만명씩이나 투입하여 전격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으나 과오는 과오대로 지적되어야 한다는 분위기다.
또 1백40여대의 이라크 기가 이란으로 피신할 가능성에 대해 전혀 낌새도 못 챈 데다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의 이동 발사 장치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 이스라엘이 피습되자 한동안 몹시 당황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침공을 위해 몇달 전부터 준비했으나 CIA는 이를 거의 임박해서야 눈치채 부시의 정책 결정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보 기관이 최소한 1주일이나 며칠 전에 만이라도 정확한 보고를 했었다면 6백85억 달러라는 막대한 전비를 들이지 않고도 사대를 해결할 수 있었으리라는 가정도 나오고 있다.
미 정보기관이 이같은 실책을 저지른 데는 여러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먼저 미 정보 기관은 정보 소스를 첩보위성 등 첨단 기술에만 의존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즉 위성 사진 등의 분석으로 적의 물량적 정보에는 접근할 수 있었으나 적의 의도나 계획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였다는 지적이다.
이라크 비행기의 피신, 쿠웨이트에 대한 기습 침공, 이동 스커드미사일 능력에 대한 무지 등이 이런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또 첩보위성에만 의존함으로써 적을 엉뚱하게 과대 평가한 결과도 나왔다.
위성 사진으로 쿠웨이트에 진입한 사단 수를 간파하여 이를 평상시의 전력으로 계산, 50만 명이라는 숫자를 산출했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이에 훨씬 못 미치는 병력이 들어왔을 뿐 아니라 공습 이전에 이미 엄청난 도망병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첩보위성은 하루 두차례 밖에는 해당 목표물을 찍지 못해 변화를 따라가기에 부적당한데도 이를 맹신한 것이 그 이유라는 비판이다.
이라크의 지휘부나 요인 피신처로 감지되어 공습한 결과 수백명의 여자와 어린이들이 피해를 본사 건도 이라크가 인간 방패를 삼기 위해 이들을 동원한 것까지는 포착하지 못 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데는 지금까지 미 정보기관의 관심이 소련에만 집중되어 중동 지역 등은 소홀히 취급되어 온데도 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또 첨단 기술에 대한 과신으로 정보의 기초가 되는 「인간 첩보」, 즉 스파이의 육성을 게을리 했다는 지적도 있다.
데이비드 보렌 미 상원 정보 위원장은 『이같은 결과는 냉전 때문에 정보의 관심이 소련에 집중되어 있었고 인간 정보에 대한 소홀함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미 정보 기관의 관심의 다양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장한 마당에 미국의 관심이 제3세계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40여년만에 처음으로 미 정보 기관 개편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문창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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