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구하려다 그만…”(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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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리를 구하려다 그만….』
31일 오후 5시20분 서울 동부이촌동 금강병원 응급실.
이날 한강에서 조정연습도중 보트가 전복,물에 빠졌다 구조된 한정호군(17·서울 광문고3)등은 자신들을 구하려다 희생된 동료선수 2명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었다.
한군은 이날 오전 10시 같은 학교 조정부선수인 조세형군과 함께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서울 흑석동 한강 조정연습경기장에서 훈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군이 속한 광문고는 지난해 해군참모총장배 대회에서 경량급 무타페어우승등 종합 2위를 차지한 조정 명문고.
오전연습에 이어 오후 3시 다시 연습을 나가야할 때쯤 바람이 드세게 불기 시작했지만 5월의 대통령배 대회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집념은 뱃머리를 다시 강쪽으로 돌리게 했다.
옆에서는 중대부고 조정선수 5명도 연습을 시작하는게 보였다.
보트가 동작대교 남단에 이르렀을 무렵 1m쯤 높이의 거센 물결이 계속 밀려들며 순식간에 물이 차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트의 수면위 높이는 20㎝.
약한 플래스틱재질의 보트는 수압을 견디지 못해 중간부분이 깨어져나가고 있었다.
허우적대는 한군등을 보고 마침 옆을 지나가던 중대부고 선수들이 힘차게 노를 저어오기 시작했다.
스포츠맨들의 진한 동료애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어서 옮겨 타.』
『고맙다.』
감사의 표시를 주고 받은 것도 잠깐. 한군등이 옮겨탄 중대부고 보트는 심한 풍랑에다 하중을 견디지 못해 서서히 부서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급한 나머지 강물로 뛰어들어 15m 정도 떨어져 있는 강변으로 한군등 3명은 뱃조각을 잡고,나머지 4명은 헤엄쳐 빠져나왔다.
그러나 한군등을 구해준 중대부고의 허균(17)·김정필(17)군 등 2명은 끝내 강변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다.
특히 구령을 붙여주는 콕스인 김정필군은 키 1m72㎝·체중 52㎏의 가냘픈 체격으로 거센 풍랑을 이겨내지 못해 동료들에게 더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생명의 은인인 두 동료들의 뜻을 이어받아 꼭 훌륭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한군의 뒤에는 두 학교의 동료선수·관계자 등이 둘러서서 살신한 두 학생의 장한 희생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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