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고려대 총장 논문표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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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는 이필상 총장.김경빈 기자

21일 취임한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자신이 지도했던 대학원생의 학위 논문과 사실상 똑같은 논문을 자신의 단독 명의로 학술지에 실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문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총장은 제자가 학위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논문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례도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실적 평가 시 공저자는 최대 50%의 업적을 인정받는다. 때문에 이 총장이 연구실적을 올리기 위해 제자들의 논문에 이름만 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대학원생 논문과 흡사"=26일 고려대에 따르면 이 총장은 1988년 12월 교내 학술지인 '경영논총'과 '경영연구'에 각각 '우리나라 채권수익률의 기간구조에 관한 연구' '외채관리에서 통화선물의 경제적 이득에 관한 실증적 연구'라는 논문 2편을 실었다.

두 편의 논문 모두 이 총장이 단독 저자로 돼 있다. 그러나 이들 논문은 같은 해 2월 고려대 경영대에서 석사학위 심사를 통과한 대학원생 논문 2편과 매우 흡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분석 결과 이들 논문은 각각 전체 283개 문장 중 227개, 223개 중 127개 문장이 제자들 논문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했다. 표.각주.공식.참고문헌 등도 제자들 논문과 같았다.

본지 취재팀이 국회도서관에서 논문을 검색한 결과 2001년 이후 이 총장이 발표한 논문 8편은 모두 공저자가 자신에게 학위를 받은 학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내용도 제자의 학위 논문을 약간만 손질한 상태였다. 이 총장이 공저자로 게재한 논문과 제자의 학위 논문은 제목과 주제.연구틀.분석방법이 비슷하며 논문 초록과 본문 등에 동일한 문장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2005년 이 총장이 제1저자로 등재된 논문 '기업집단의 경영구조와 기업성과 및 기업가치의 인과관계에 관한 연구'는 그해 8월 나온 제자 신유식씨의 박사학위 논문과 거의 동일하다. 2001년 이 총장이 제자 최진범씨와 공저자로 발표한 '모수적 이자율 기간구조 모형을 이용한 미래 현물이자율 예측에 관한 연구'도 최씨가 2000년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에서 상당 부분을 인용했다.

또 이 총장은 자신의 저서 '금융론' '금융경제론' '금융경제학' 등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의 폴 스미스 교수가 78년 출간한 'Money and Financial Intermediation(금융기관론)'의 상당 부분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인용한 의혹도 받고 있다.

◆ "과거 관행이었다"=이 총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을 만나 "과거의 학술 관행 때문에 현재 관점에선 일부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다"며 "불미스러운 사태가 빚어져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988년 논문 작성 경위는.

"당시 내가 구상했던 논문 주제 2개와 관련한 자료를 석사과정 학생 2명에게 줬다. 이를 발전시켜 학위논문으로 쓰라는 뜻이었다. 그들이 졸업한 뒤 고대에서 발간하는 논문집에 논문을 내라는 독촉이 있어 학생들에게 준 논문 초안을 투고했다."

-윤리적 문제를 예상하지 못했나.

"내가 구상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제자가 먼저 학위 논문으로 출간한 뒤 비슷한 논문을 내 이름만으로 학술지에 게재한 것은 현재의 연구윤리에서 보면 적절치 못하다. 그러나 당시 관행으로 볼 때 크게 문제시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원래 아이디어가 내가 직접 구상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엔 부적절하다고 느끼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05년 논문 제1저자가 된 계기는.

"제자 신씨의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하면서 신씨에게 학술지에 투고해 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논문 게재가 확정됐다는 말을 들었을 뿐 제1저자로 명기된 사실은 몰랐다."

◆ 학계 반응=아주대 독고윤(경영학) 교수는 "논문 지도만으로 교수가 제1저자는 물론 공동저자로 대접받는 것은 외국에선 상상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고려대 김균(경제학) 교수는 "공동연구한 논문이 별도의 논문으로 발표되는 88년 당시 관행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천인성.한애란 기자<guchi@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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